우리는 소년을 기억한다. 작은 뼈마디가 금세라도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릴 것처럼 온몸을 뒤흔들고 중력을 거부하듯 세차게 날아오르던 소년, 빌리 엘리어트. 열망과 두려움, 환희와 울분을 격정적인 몸짓에 응집해 폭죽처럼 터뜨렸던 열네살의 제이미 벨은 2000년 스크린이 발견한 영롱한 보석이었다. 그리고 2008년. 어느덧 20대에 들어선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이후 처음으로 고향땅 영국으로 날아가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제목이 곧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할람 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무 위 오두막에 틀어박힌 채 살아가는 할람은 어머니의 드레스를 걸치고 립스틱을 바른 채 망원경으로 세상을 훔쳐본다. 새어머니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증오하면서도 부글대는 호기심과 성적 열망으로 관계를 맺는가 하면, 고향에서 도망쳐나와 머무르게 된 런던에서는 시계탑 뒤편의 다락에 몰래 기거하며 어머니와 꼭 닮은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본다. 찬란한 희열로 허공을 유희하던 소년에서 허공에 관음의 둥지를 구축한 고독한 청년으로. 8년의 세월을 향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순백의 토슈즈가 어울리던 그 소년은 과연 어떻게 성장해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