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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똥배 임달화의 카리스마
주성철 2008-05-02

얼마 전 <삼국지: 용의 부활>로 한국을 찾은 유덕화를 인터뷰했다. 오래전 프루트 챈을 지원해 <메이드 인 홍콩>(1997)을 만든 것처럼 그는 후배 감독 발굴에 큰힘을 쏟고 있다. 2005년부터는 자신의 포커스필름에서 ‘퍼스트 컷’이라는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당장 가장 주목하는 감독을 물었을 때 그는 망설임없이 엽위신과 유내해라고 말했다. 엽위신은 <살파랑> <용호문>을 통해 이미 중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반면 유내해는 이제 막 데뷔작 <근종>(2007)을 내놓은 신인감독이다. “홍콩의 도시 이미지를 그들처럼 잘 담아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유덕화의 칭찬이었다. <미션> <흑사회>를 포함, 여러 인상적인 두기봉 감독 영화의 각본을 썼던 유내해는 과거 <천장지구>(1990)의 진목승과 <비상돌연>(1998)의 유달지와 비교해도 두기봉 사단이 배출한 최고 인재라 할 만하다.

얼마 전 ‘<씨네21> 기자들의 추천 배우’를 꼽을 때 임달화를 추천했다. 과거 <첩혈가두>(1990)를 보면서는 참 느끼했고(더불어 <영웅본색> 시리즈의 주윤발 같은 캐릭터를 넘겨받았다는 얘기에 심지어 화가 났고), 왕조현과 함께 출연한 <자유인>(1990)에서는 좀 멋있었다. 그래도 딱히 기억해둘 만한 배우는 아니었다. 이후 수많은 에로영화와 B급도 아닌 C급 액션영화들을 구르고 구른 가운데 그는 거의 기적처럼 현재 홍콩영화계에서 양가휘, 황추생, 오진우와 더불어 가장 멋진 중견배우로 거듭났다. 과거와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까무잡잡한 피부는 그대로지만, 지난 10년여간 꽤 멋진 짧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은 비호감인 정이건도 나중에 머리를 짧게 자르면 임달화처럼 멋있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근종>은 치밀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금은보석상을 터는 양가휘 일당을 쫓는 추적조 황 반장팀의 이야기다. 유덕화의 감탄처럼, 홍콩섬 북부의 셩완에서 센트럴로 이어지는 유동인구 과밀 거리에 카메라를 들이댄 솜씨는 놀랍다. 요원A가 표적을 놓치면 또 다른 요원B가 쫓고 언제나 옥상 빌딩에서 범죄 현장을 내려다보는 양가휘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다시 작전을 수정하면서 서로가 물고 물리는 식이다. 언제나 실시간으로 치밀하게 범죄 현장을 재현했던 ‘선현’ 장 피에르 멜빌과 왕년의 마이클 만처럼 <근종> 역시 거의 20여분 넘게 숨막히는 도심 강탈장면을 재현한다. 여기서 본능적으로 한번 만났던 사람의 얼굴과 옷차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체온까지 머리 속에 데이터처럼 저장하는 임달화와 양가휘는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옛 무협영화의 고수들이다. <근종>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에서 검 대신 무전기와 휴대폰을 든 협객들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특히 정체를 감추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배에 물건을 집어넣어 똥배를 만든 임달화는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리더로 나온다. 그가 최근 선과 악의 캐릭터를 자유로이 오가면서 외형상으로는 어쨌건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줬다면 <근종>은 그 변화에도 성공한 영화다. 더불어 <흑사회>에서 임달화가 바위로 내리쳐 죽였던 양가휘 아내 역의 소미기가, <근종>에서는 임달화의 가장 절친한 동료 형사로 출연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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