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하던 딸이 갑자기 납치당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어떻게 생긴 듣보잡들인지 알고 싶었다.

-아, 진짜 감탄했습니다. 잡혀가는 딸에게 휴대폰으로 침착하게 납치범들의 외모를 설명하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이런 게 진짜 프로페셔널이구나 싶었거든요. =어떻게 생긴 듣보잡들인지 알고 싶었다. 찾아서 죽일 거니까.

-그 말은 아까 하셨는데. 여튼 수월하게 단서를 찾으시는 걸 보면서 역시 하늘이 도왔구나 싶었습니다. 막히는 일도 별로 없이 술술 놈들을 찾아내시더라고요. 덕분에 긴장감은 좀 떨어지더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래도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상대를 단숨에 죽여버리는 건 좀 무섭더라고요. 워낙에 악독한 놈들이긴 했지만 사실 사람이 터미네이터나 스티븐 시걸이 아닌 이상 동공이라도 한번 흔들려주고 죽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딸 잃은 부모가 사람 심정인 줄 아냐. 그리고 어차피 죽일 거면 빨리 죽이는 게 덜 구질구질하다.

-녹슨 기요틴 닦는 사형수 심정이었다는 거? 근데 하나 더 무서웠던 게 있어요. 아무리 놈들을 잡기 위해서였고 생명에는 이상이 없다지만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아내를 그렇게 쏴버리는 건 너무 냉정했습니다. =안 죽게 잘 쐈다. 아픈 건 참으면 된다.

-그거야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새 남편이 부자니까 잘 치료했을 거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여자다.

-엥, 그런 분으로 보이지는 않던데. 이왕 따지는 거 하나만 더 따져볼게요. 왜 그렇게 딸을 과잉보호하세요. 꼭 딸 사는 집 근처까지 이사해서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흠좀무… 섭더라고요. =세상은 무서운 데다.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나. 파리는커녕 집 앞 슈퍼도 함부로 못 가는 세상이다.

-하긴 저도 <추격자> 보고 야밤에 슈퍼 잘 못 가게 됐어요. 덕분에 야식이 좀 줄어서 좋긴 하지만. 슈퍼뿐만 아니라 파리도 좀 무섭더라고요. 근데 파리가 진짜로 영화 속 파리 같다면 그거 정말 고모라 아닙니까. =파리는 부패한 프랑스 경찰놈들. 쓰레기 같은 아랍놈들. 버러지 같은 알바니아놈들이 사는 도시다.

-에이. 파리야 싫어하실 수도 있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이나 아랍 사람들이 모두 다 숫처녀에 미친 인신매매범은 또 아니죠. =부패한 프랑스 경찰놈들. 쓰레기 같은 아랍놈들. 버러지 같은 알바니아놈들.

-그건 좀 인종차별적인 표현인데. 표현을 좀 순화해서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프랑스 경찰놈들은 썩었다. 아랍놈들은 쓰레기다. 알바니아놈들은 버러지다.

-문장을 도치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만…. 그나저나 사람들이 제이슨 본과 자주 비교를 하던데 기분이 어떠세요. 누구는 중년이 된 제이슨 본이라던데. =제이슨 본은 마음이 넓어서 특수요원으로는 실격이다. 나처럼 되려면 한참 멀었다.

-하지만 제이슨 본이 아버지가 되면 또 어떨지 모르죠. =애비는 아무나 하는 줄 아나. 결혼해서 애 낳으면 철딱서니없는 십대 딸내미랑 콘서트장에 가는 게 알바니아 갱이랑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될 거다.

-한국 중년 오빠들이 브라이언씨를 좋아하는 이유가 딱 이해가 가네요. 마누라는 부자랑 결혼했죠. 딸도 그 집에 뺏겨서 일주일에 몇번 보지도 못했죠. 전직 특수요원이면 뭐해요. 은퇴하면 일반 시민. 이혼하면 이혼남. 딸한테는 간섭 심한 중늙은이. 하지만 파리까지 가서 딸을 구한 뒤 전부인과 딸의 히어로로 복귀하는 거. 한마디로 꿈이죠 꿈. 백일몽. 희망사항. 중년 남자들의 판타지. =그럼 네 판타지는 뭔가.

-샘 페킨파의 <지푸라기 개>에 나오는 데이비드 썸머요. 운동신경 제로에 키도 160이 간당간당한 학자 양반이 건장하고 포악한 시골 청년들과 싸워서 이기잖아요. 곰덫으로 찍어 죽이고 총으로 가슴도 막 뚫고. 속이 확 뚫려요. =학교 다닐 때 왕따였나보군.

-아니 그건 아닙니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