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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신부님의 강추 영화
주성철 2008-04-25

존 휴스턴 영화제에서 <야생마>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미스피츠>(The Misfits, 1961)를 봤다. 마릴린 먼로의 유작으로 막 이혼한 로즐린(마릴린 먼로)이 늙수그레한 카우보이 게이(클라크 게이블)와 네바다주 리노의 황야에서 지내는 얼마간의 날들을 그리고 있다. 예전부터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바로 베네딕도 미디어의 임인덕 신부님이 떠올라서다. 본명 하인리히 세바스찬 로틀러. 1935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임세바스찬 혹은 임인덕 신부라 불린다. 국내 시네필에게는 <십계> 연작, 리베트의 <잔다르크> 비디오를 출시한 분으로 유명하다. 이후 DVD로 매체를 바꾼 뒤로도 지금까지 안제이 바이다와 프레데릭 벡의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계신다.

매번 출시작들이 있을 때마다 수고스럽게 직접 보도 자료와 테이프를 들고 서울 나들이를 하시는데, 2005년 여름에는 경북 왜관에 있는 수도원으로 취재차 직접 찾아뵌 적이 있다. 놀랍게도 팔려 나가는 DVD들을 직접 일일이 비닐 포장하고 계셨다. 아무튼 그날, 신부님으로부터 DVD 출시 계획부터 좋아하시는 영화들에 대해 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베스트10은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나 <스토커> 같은 영화들이었지만, 뭐가 못내 아쉬웠는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또 하나 있다”며 테이블에 무릎을 꿇고 올라서서는 한참 위에 올려져 있던 <미스피츠> VHS 테이프를 보여주셨다.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쉽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모셔둔 그 테이프를 꺼내시는 모습이 꼭 ‘야동’을 꽁꽁 숨겨둔 학생 같았다. 이후 약속시간을 더 미뤄두고 마음이 편해지신 신부님은 <미스피츠>를 거의 숏 바이 숏처럼 보여주셨다.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에서 계속 이용당했습니다. 아무런 인맥도 연고도 없는 그녀는 어쨌건 살아남아야 했기에 늘 뻔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제대로 된 드라마 연기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다 남편 아서 밀러가 쓰고, 존 휴스턴이 연출한 <미스피츠>에 와서야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이 표정과 움직임을 보십시오. 그녀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정말 연기가 훌륭합니다.” 뭐라고 할까, 남의 나라에서 40년 가까이 혼자 생활하고 계신 신부님의 ‘강추’ 영화가 마릴린 먼로의 작품이라는 것이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마릴린 먼로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2005년에는 사망 전 정신과 의사 랄프 그린슨 박사와 나눈 비밀 녹음테이프 내용이 43년 만에 공개되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에 얽힌 내용은 <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이라는 소설로 재구성돼 출간되기도 했다. 신부님 역시 타살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그녀는 다시 자신감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제대로 더 할 수 있을 때 죽었습니다. 그 의사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계속 아파서 자기를 필요로 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신도의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의 모습은 흔들림없는 공정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한 여배우를 향한 깊은 애정과 안타까움을 힘줘 말하던 그의 모습에서는, 그런 근엄한 모습보다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뒤늦게 깨달은 듯한 소년의 귀여운 흥분을 읽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영화는 훌륭했고,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마릴린 먼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신부님께 전화 한번 드려야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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