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독후감을 놓고 동료들과 잡담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남자 하나 여자 셋이었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90살 넘은 늙은이의 로망에 물든 아직은 늙지 않은 남자의 예찬이라니. 내 점잖은 여동료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대놓고 혀를 찼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때 내가 부른 이름은 마르케스가 아니라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였다. 포르투갈 출신의 그는 위대한 감독이지만 불세출의 희극배우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 등에도 출연했지만 늘 자기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깡마른 체구로 비틀대다가도 어디선가 여인의 음성을 들으면 폴짝폴짝 뛰어가던 그의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봤다면 그가 위대한 희극인의 몸과 제스처를 가졌다는 내 말을 이해하리라. 점잖은 말투, 맑은 정치관, 깊이있는 철학을 자랑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음탕하기 짝이 없는 손길을 가졌다. 그는 영화에서 평생 처녀들의 몸을 흠모했고(그러나 그는 탐하지 않았다) 그들의 체모를 성스럽게 모았다. 변태인가.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녀들을 혹사하지 않았고 도리어 위했다. 유작 <오고 가며>(2003)에서 이미 병들어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그는 하녀를 상전으로 모신 채 제 손으로 방바닥을 닦고 있다. 이탈리아 빨치산의 노래인 <벨라차오>를 틀어놓고 박자를 맞춰 솔질을 하던 그의 우습고도 슬픈 몸놀림이여, 누가 그런 희비극의 자태를 지녔는가. 초음란의 늙은이, 나의 아름다운 몬테이로여, 이 우스꽝스러운 늙은이여, 나의 헌사를 받아라. 당신에게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구절을 바치리다. “여비서들은 입술 모양이 찍힌 팬티 석장을 선물하면서 생일 카드에다 자신들이 자진해서 내 팬티를 벗겨주겠다고 써놓았다. 그러자 늙는다는 것의 매력 중 하나는 우리를 용도 폐기된 존재로 여기는 젊은 여자 친구들이 도발적으로 말과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구절이 우스꽝스러운 당신에게 바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성스러운 당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성당의 종소리가 7시를 알렸을 때, 장밋빛 하늘에는 아주 밝은 별 하나만이 떠 있었다. 배는 처량한 작별의 고동을 울렸다. 그러자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잘 있습니까. 이 위대한 변태 늙은이. …나의 먼저 간 사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