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름다운 여자와 마주쳤다. 넋을 잃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우아한 자태의 그녀는 뇌쇄적인 눈길을 보내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건넨다. “내가 당신을 괴롭게 하나요?”(Am I Abusing You?)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주어야 할 차례. 벌써 표정과 몸짓은 어색해지는데, 뇌에서 입까지 전달하려는 대답은 또 의식적으로 상황을 부인한다. 닮고 싶거나, 다가가고 싶거나. 다양한 욕망이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반응과 이를 감추려는 의식적 반응이 제각각 작동하는 와중에 바로 이런 모습 자체가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진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스위스 작가 다니엘 부에티다. 기존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해온 그는 여성 모델들이 등장하는 사진에 라이트 박스와 작은 조명기기로 화려한 빛을 넣고, 글자를 만들어 넣어 마치 모델들이 질문을 건네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최근작들은 이렇듯 사진과 조명,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글자 요소가 결합된 작품이다. 끊임없이 노출되어 익숙해진 이미지가 현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을 짚어내면서, 미디어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현대인의 욕망과 대중매체로 도구화된 욕망의 대상은 다니엘 부에티가 즐겨 이야기하는 주제다. 그러니까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아까의 그 당황스러운 반응을 미디어, 대중문화, 현대인의 욕망 같은 단어들이 설명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답이 있나요?”(Is There An Answer?)라는 질문 아래 누군가를 유혹하듯 누워 있는 모델을 보고 작품 속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상상하다가, 어느새 질문 자체를 되뇌이게 될 때 다니엘 부에티의 작업은 또 다른 가치를 발휘한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찾아낸 건 비단 욕망의 환영만이 아니라 실존주의적인 고민일지도 모른다. 먼 곳을 응시하는 모델의 뒷모습 뒤로 “질문도 답이 될 수 있나요?”(Can A Question Also Be An Answer?)라는 말을 건네 받았을 때, 그래서 또 한번 멈칫하게 된다.
미디어가 바라보는 대상, 미디어를 통해 대상을 소비하는 대중, 그 미디어의 작동 체계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관람자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적절하게 끼어든 그의 작업은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다가가기에 쉽다. “예술의 본질이 긍정적일까요?”(Is The Very Nature Of Art Affirmative?) 변기나 수프 깡통 같은 오브제에 붙여놨으면 온 종일 고민했을 이런 질문마저 작품 속 모델 이미지와 더불어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로 느껴지니 말이다. 파리, 밀라노, 뉴욕, 브뤼셀, 마드리드, 취리히, 빈, 베를린, 시드니 등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던 것은 그저 패셔너블한 작품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