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 그런가, 요즘 유독 의류 광고들이 늘어난 것 같다. CF의 내용이나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그냥 이런 현상이 기분 좋은 것은 꽤나 오랜 기간 공중파 CF를 선보이지 않던 의류 업종들이 조금씩 다시 말 많은 광고판으로 돌아온다는 반가움 때문이다. 통신사와 휴대폰, 가전제품들만 넘실대는 CF 사이에서 어쨌든 조금은 다양한 모습을 보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게다가 이런 의류 CF에는 옷발 잘 받는 최고 모델들이 가장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니 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런 의류 CF 사이에서 눈에 자주 보이는 두편의 남성 정장 CF가 있다. 한동안 기억 뒤편으로 사라졌던 슈트 광고라 더욱 반갑다. 넥타이를 매야 하는 대한민국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옷장이라면 기본으로 한벌쯤은 걸려 있을 법한 갤럭시와 로가디스가 새 봄 새 CF를 내놓았다. 우리 아버지 옷장에도 그 브랜드가 하나씩 있더라. 최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더 젊고 가늘고 캐주얼한 느낌의 젊은 브랜드가 인기인 모양이지만 어쨌든 오랜 기간 한국의 대표 정장 브랜드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브랜드는 현재까지 가지고 있던 무게와 이미지가 엇비슷했지만 새로 선보이는 CF가 추구하는 방향은 매우 달라서 앞으로의 결과를 기대하며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더란 사실.
갤럭시는 지난해부터 피어스 브로스넌이라는 훌륭한 모델을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전세계적 배우의 모델료가 의외로 국내 톱 모델료와 엇비슷하거나 혹은 더 싸기도 하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모델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이미지라 하면 007로 기억되는 재치있고 능력있는 영국 신사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CF 역시 모델에 부합하게 깔끔하고 심플하면서도 메시지는 강력하다. 영국 신사의 입으로 슈트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갤럭시는 언제고 변하지 않는 슈트의 원칙에 부합하는 브랜드라는 얘기지. 스타일이나 패션이라기보다 남성에게 슈트가 가진 의미 자체에 집중한다. 원칙, 의미란 것들이 어떻게 보면 좀 고루한 이야기라 젊은 층에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에 대한 환상 섞인 의미, 그러니까 품격있는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는 더 신사적일 것 같고 차분할 것 같고 멋있을 것 같은 판타지가 계속 살아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건 괜찮은 전략이다. 20대한테는 안 통할 수도 있지만 30대 남자 혹은 30대 남자의 옷을 고르는 아내에게 그럴듯하게 먹힐 법하다. 갤럭시가 가진 전통, 정통적인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정말 갖춰 입으려면 하나쯤 가져야 하지 않을까 고려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그에 비해 로가디스는 젊고 팔다리가 길쭉하면서도 몸매는 가느다란 패션 모델을 내세운다. 두편의 멀티 CF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 메시지가 상당히 재미있다. CEO와의 저녁식사를 고민하는 청년. 실적은 못 속이고 억지로도 못 웃고 아부에는 소질없다. 성공하고 싶다면? 스타일로 승부하란다. 여자에게 채였단다. 차도 당장 못 바꾸고, 성격도 못 고친단다. 복수하고 싶다면? 스타일로 승부하란다. 참, 뭐랄까. 왠지 이제 막 사회로 빠져나온 치기어린 소년 같은 이미지랄까. 갤럭시의 진중하고 무게있는 슈트의 의미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남자는 언제나 애’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만든다니까. 성공과 복수를 꿈꾸는 남자의 최후 보루가 쫙 빼입은 옷발이라니. 어쩐지 좀 귀엽기도 하고 말이다. 잘 차려입은 슈트에서 명예라거나 매너 등의 의미를 덧씌우는 전통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슈트를 하나의 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얘기한다. 슈트란 모름지기 남들에게 ‘남자를 가장 있어 보이게 만드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솔직히 까발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모습을 보고 첫인상을 결정하고, 그걸 토대로 나머지 것들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루키즘에 대한 당당함이 모델의 멋진 스타일과 어울려 브랜드를 꽤 강력하게 어필한다. 분명 중년층보다는 젊은 남자들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자기 옷은 자기가 직접 고르는 젊은 남자들.
비슷한 위치를 점한 두 브랜드가 이렇게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 흥미롭다. 두 CF 모두 나름 매력이 있고 방향이 확실하니 아마도 차곡차곡 브랜드 이미지가 새로이 쌓이다보면 몇년 뒤에는 지금과는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뢰할 수 있는 로맨스 그레이와 덜 익었지만 스타일리시한 젊은 청년의 대결쯤? 그러니까 배우로 치자면 ‘조지 클루니’냐 ‘헤이든 크리스텐슨’이냐 그것이 문제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