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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무시대적 액션 멜로 <로미오와 줄리엣>

EBS | 4월20일(일) 오후 2시40분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여러 차례, 여전히,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하고 있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시대적 배경이 달라지고, 배우가 달라지고, 제목이 달라져도 두 원수 집안,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 진부한 서사가 사랑의 원형처럼 빛나는 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만 국한된 일로 여겨질 만도 한데, 수많은 영화들은 이상하리만큼 집안싸움 때문에 파국이 정해진 그 사랑에 유난히 매혹된다. 1996년, 바즈 루어만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를 데리고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렇다. 올리비아 허시를 전세계의 연인으로 만들어준 1963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대적 배경도, 내용도 원작에 충실했다면, 바즈 루어만의 작품은 고풍스러운 원작에 최첨단 기술력을 입혔다. 그걸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용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니 재해석일 리 만무하고 속도감이 있고 화려한 영상미와 록음악으로 치장했다고 해서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멕시코의 이국적 분위기를 한껏 활용하며 베라크루즈 해변을 베로나 해변으로 대체한 이 영화는 차라리 무국적, 무시대적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 멜로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다. 말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왕국에서 MTV적 감수성을 발견한다면, 그건 이곳이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지만 그 모든 것이 패션처럼 소비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며, 최첨단과 고풍스러움의 조화가 인물들의 사랑에 현실감 대신 인공미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즈 루어만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신의 장기를 한껏 살려 다시 만들 때(그는 <댄싱 히어로>와 <물랑루즈>의 감독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멜로 라인에도 과감한 변화를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백년 전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진정성을 촌스럽게 되풀이하며 갑자기 사뭇 엄숙해지는 대신 5일 만에 사랑하고 결혼하고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이별하는 그 사랑을 영화 전체의 거침없는 분위기만큼 한껏 과장되고 가볍게 아예, 패션으로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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