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정원의 반딧불들>(Fireflies in the Garden)은 어느 미국 중산층 가족의 초상이다. 작가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은 어머니 리사(줄리아 로버츠)와 아버지 찰스(윌렘 데포), 이모 제인(에밀리 왓슨)을 만나기 위해 시골집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폭압적인 찰스의 훈육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마이클에게 리사는 가족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러나 리사가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하자 그간 숨겨져왔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영화 속 미국 중산층 가족은 폭압적인 아버지와 인고의 어머니, 그리고 덜컹거리는 부자관계까지 기이할 정도로 한국적인 가족상에 가깝다. 그토록 미묘한 한국성은 작가 최인호 감독의 외조카이기도 한 감독 데니스 리의 핏줄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서면 인터뷰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올해 베를린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저예산 인디영화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데뷔작으로 이만한 국제적 인지도를 얻은 기분이 어떤가. =환상적으로 근사했다. 게다가 이번 경험은 나를 위한 일종의 훈육이기도 했다. 데뷔작으로 <정원의 반딧불들> 같은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은 것은 어이없을 만큼 대단한 선물이다. 감사하게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더 나은 이야기를 빚어내는 방법,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방법, 내 직관을 믿는 방법. 만약 내가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따를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다.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뉴욕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그토록 급진적으로 커리어를 바꾸게 된 동기는 뭔가. =내가 언제나 이야기꾼이기를 원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어떤 매체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미술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며 음악가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게 되기까지는 정말 소용돌이처럼 둘둘 엉킨 경로를 거쳐야 했다.
-집안 내력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외삼촌이 저명한 소설가 최인호씨 아닌가. 집안 내력으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적인 영감이 있다고 느끼나. =우리 집안에는 언제나 예술가적인 면모가 있었다. 나의 예술적인 취향 역시 피 속에 흐르고 있는가 보다. 물론 우리 집안과 나의 개인적인 삶으로부터 기인한 경험들은 언제나 내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가능한 한 진실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창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정원의 반딧불들>은 어떻게 만들게 된 이야기인가. =영화학교에 있을 때 썼던 대본으로, 당시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쓰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내가 알던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을 조합해서 집어넣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 인생 최악의 비극이었다. 그런 비극에서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쓰는 것은 치유적이고 정화(淨化)적인 행위인 것 같다.
-그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어떻게 한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었나. =캐리 앤 모스를 주인공 마이클의 아내 역으로 캐스팅한 것이 진정한 행운의 시작이었다. 그러고 나서 줄리아 로버츠가 마이클의 어머니를 연기하겠다고 나섰다. (줄리아 로버츠는 <정원의 반딧불들>의 촬영감독인 대니 모더의 아내이기도 하다.-편집자). 그러자 대본은 할리우드에서 점점 이름을 얻기 시작했고 에밀리 왓슨, 라이언 레이놀즈, 윌렘 데포 같은 배우들이 참여를 결정했다. 그것이 바로 이처럼 위대한 배우들, 동시에 위대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캐스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과정이다.
-데뷔 감독으로서 그처럼 유명한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 좀 까다롭진 않던가. =아니.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쉬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있어서라면 완전히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매우 진지하게 간주하며, 스스로 리서치하고 질문하고 리허설을 한다. 어떤 배우도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영화를 공동작업으로 해낼 수 있었다.
-언제 미국 개봉이 예정되어 있나. =개봉을 기다리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북미 지역에서는 언제쯤 개봉할지 나도 잘 모른다. 듣기로는 늦봄이나 초가을 중 하나가 될 거라던데.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만약 나보다 먼저 알게 되면 꼭 좀 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