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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영화시장 생존전략] 10대의 열광을 두려워말라
정재혁 2008-04-17

한국영화에 10대 시장은 있는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4월3일 제작 1년 만에 개봉한다. 촬영이 중단되고 제작사가 바뀌는 등 진통을 겪은 뒤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에 이어 귀여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10대 관객을 주요 타깃으로 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지금 충무로에선 10대를 타깃으로 한 작품들이 하나둘 다시 제작되고 있다.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선 장근석을 주인공으로, 갑자기 아기를 떠맡아 기르게 된 고등학생의 이야기인 <아기와 나>를 촬영하고 있고,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는 귀여니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남자친구에게>를 준비하고 있다.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전국관객 500만명)와 2004년 <늑대의 유혹>(218만명), <어린 신부>(314만명) 등으로 10대 영화의 붐이 일었던 충무로에 다시 10대 영화 바람이 불 수 있을까.

<도레미파솔라시도>

<늑대의 유혹>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2004~2005년의 작품을 살펴봐도 흥행에 성공했던 <늑대의 유혹> <어린 신부> <내사랑 싸가지>와 달리 비슷한 컨셉의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와 <제니, 주노> 등은 흥행에 실패했고, <해부학교실> <므이> <두사람이다> 등 10대 영화의 대표적인 장르라 간주됐던 10대 공포영화들도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만듦새 논란부터 10대 시장의 여부 문제까지. 최근 충무로 10대 영화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대다수 작품들이 10대와 20대를 타깃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10대만을 위해, 10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가령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 <백만장자의 첫사랑>처럼 10대를 메인 타깃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고 해도 10대 관객조차 외면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틴에이저영화, 아이돌영화, 청춘영화 등의 용어가 뒤섞여 10대 영화를 ‘유치하다’, ‘아이돌 스타들의 프로모션용 영화’로 오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충무로 10대 영화,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돌 스타 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2007년 개봉한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10대 영화로서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다. SM 소속의 댄스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가 출연한 이 영화는 총제작비 15억원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작품이다. 2007년 7월26일 개봉해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극장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판권 판매와 DVD 수입으로 손실을 면했다. 2007년 10월 발매된 DVD는 1만5천장 넘게 팔렸다. 현재 국내 영화 타이틀의 평균 판매량은 2천~3천장이다. 부진했던 극장 손실을 DVD 판매로 메운 셈이다.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 판권과 DVD의 높은 판매량은 슈퍼주니어의 고정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 정도의 부가판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던 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의 김병관 프로듀서는 “2달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쳤고, 일정도 최소화해서 진행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영화 제작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의 출연료는 슈퍼주니어 멤버 13명 모두 합쳐 1억원이었다. 하지만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아이돌 스타의 존재가 현재 국내 영화계에서 얼마만큼 시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에 중요하다. 김병관 프로듀서는 11만 극장관객 중 “80% 이상이 10대 관객이었고 대부분은 슈퍼주니어 팬이었다. 극장에서 팬들이 소리를 질러 일반 관객은 관람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침체된 DVD시장에서 아이돌 스타의 영화는 예외의 강세를 보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슈퍼주니어의 팬만으로 9만명의 극장관객과 1만5천장의 DVD시장이 가능한 셈이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1998년 젝스키스가 출연했던 <세븐틴>, 2000년 HOT의 <평화의 시대> 등. 그동안 만들어진 아이돌 스타 영화에는 저질 완성도라는 부정적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아이돌 스타 영화가 가야 할 하나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10대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학교에 판더가 등장하고 배변을 테러의 무기로 사용하며, 최고 꽃미남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엉뚱하지만 사실감있는 이야기가 발랄한 리듬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리듬은 그동안 10대를 겨냥했던, 하지만 10대 영화가 되기엔 부족했던 대다수의 국내 영화들이 실패한 지점과 대조된다. <그놈은 멋있었다> <제니, 주노>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은 모두 만화 같은 에피소드로 시작해 죽음, 결혼, 이별 등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김병관 프로듀서는 “기성 세대는 10대들의 맹목적인 팬심, 팬문화를 냉소하고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대다수의 10대 영화들이 10대의 가벼운 정서만으로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내용이지만 발랄한 어투로 인기를 모았던 귀여니의 소설이 영화에선 신파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변질된다. 10대 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타깃에 대한 목표가 흐릿해지고 결국 제대로 된 10대 영화는 포기하는 셈이다.

배우 캐스팅부터 홍보까지 정확한 타깃 설정이 관건

캐스팅에서도 현재 충무로의 취향은 10대의 취향보다 한 템포 느리다. 강동원이 <늑대의 유혹>에, 문근영이 <어린 신부>에 출연했을 때 이들은 스타가 아니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장근석도 영화가 기획되던 2006년에는 신인배우였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과 <그놈은 멋있었다>의 엇갈린 명암도 인상적이다. 당시 스타성을 인정받은 송승헌과 정다빈 주연의 <그놈은 멋있었다>는 흥행에 실패했고, 신인에 불과했던 강동원, 조한선 주연의 <늑대의 유혹>은 크게 성공했다. <늑대의 유혹>의 이정학 프로듀서는 “10대들은 정말 신선한 것, 신제품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10대는 새로운 얼굴을 원하는데 영화계는 이미 검증된 스타로 10대에게 다가가려 한다. <어린 신부>의 유순일 프로듀서는 “배우 캐스팅 때문에 배급사에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대가 흉내낸 10대 영화, 10대와 20대를 아우르는 젊은 취향 영화 속의 10대, 그것이 현재 충무로의 애매한 10대 영화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15~18살 여자(22.2편)의 경우 24~29살 여자(26.6편) 다음으로 연간 관람 영화편수가 많았다. 같은 연령대 남자의 경우 8.7편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수치는 낮았지만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최정민 프로듀서는 10대 관객의 크기를 200만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대다수 여자 중·고등학생이 관객이었던” <늑대의 유혹>이 218만 전국관객을 동원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200만 시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한국영화 제작비 내에서 쉽게 공략할 수 있는 틈새는 아니다. 최정민 프로듀서는 “마케팅비를 많이 줄여서 하고 있지만 10대 관객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경우 총제작비가 35억원 정도이고 손실을 면하기 위해선 150만 관객이 들어야 하는데 현재 국내영화계의 사정을 감안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영화 전체가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에서 10대 틈새 공략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틈새이기 때문에 가능성도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원작자인 귀여니, 장근석의 팬카페 등에 홍보를 집중하고 있다. 방송, 잡지 광고도 일절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홍보를 하고 있다. 최정민 프로듀서는 “귀여니 카페의 100만 회원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마케팅 비용이 절반 가까이 절약됐다”고 말했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 보여준 DVD 특수도 유효하다. 10대 영화는 주연배우에 대한 선호도가 영화의 흥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DVD 구매 욕구도 다른 영화에 비해 높다. <늑대의 유혹>도 강동원 인기에 힘입어 1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즉 10대 영화는 타깃을 좀더 명확하게 하면 할수록 잠재적인 가능성이 늘어난다. 아이돌 스타가 가지는 흥행성과 홍보효과, 신인배우이기 때문에 줄일 수 있는 출연료, 10대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해 응용할 수 있는 마케팅 기술 등. 좋은 만듦새도 영화의 정확한 타깃 설정에서 나온다. 시장이 없을까 두려워 타깃이 애매한 영화를 만들고 익숙한 드라마로 모든 영화를 마무리짓는 건 안전하긴 해도 10대 영화 시장을 위한 길은 아니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10대 영화도 10대 문화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분석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충무로 10대 영화, 잘만 기획하면 침체된 영화계의 틈새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아이돌 영화 제작사 제이스톰이 만든 영화들의 성공비결

아이돌 스타 매력 생생히 살려 십대들 열광

<쿠로사기>

자니스 사무소 소속의 댄스그룹 아라시의 개별 레이블에서 시작한 제이스톰은 SM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 참조하지 않았을까 싶은 이상적인 형태의 ‘아이돌 영화 제작사’다. 음반 제작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콘서트 영상이나 자니즈 소속 아이돌의 영상도 제작해 DVD로 발매하고 있다. 2002년 아라시의 전 멤버가 출연한 영화 <피칸☆치 LIFE IS HARD 하지만 HAPPY>를 시작으로 2004년과 2007년 역시 아라시 주연의 영화 <피칸☆치 LIFE IS HARD 그래서 HAPPY>와 <황색눈물>을 제작했고, V6의 멤버가 출연한 <COSMIC RESCUE> <홀드 업다운>, 그룹 TOKIO의 고쿠분 다이치, 그룹 Kinki Kids의 도모토 즈요시가 함께 주연한 <판타스티포>도 제작했다. 2007년엔 그룹 NEWS의 야마시타 도모히사가 주연한 영화 <쿠로사기>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상영 중인 <쿠로사기>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 6편 중 적자를 본 작품은 한편도 없다. 제이스톰의 대다수 영화는 회사가 소유한 그로브좌 극장의 단관 개봉을 기본으로 하는데, 배우들의 TV프로그램 출연, 편의점 체인 로손과의 마케팅은 단관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홍보효과를 갖는다. 자니스 소속 스타들의 매력을 생생히 살려낸 캐릭터와 유쾌한 모험담이 제이스톰 영화의 특징. 젊은 여성 관객이 주요 타깃이라 그로브좌 극장의 배치되는 영화 팸플릿에는 영화에 나온 물건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등의 정보도 실려 있다. 제이스톰의 대표 후지시마 주리 K는 제이스톰의 성공비결에 대해 “자니즈 사무소의 엄격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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