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음반 커버를 통해 그 속에 들어 있는 음악의 성격을 짐작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우타다 히카루의 신보 커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기없는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 아래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 그녀야 언제나 얼굴 하나로 커버 사진을 채워온, ‘커버보다는 음악에 돈을 쓰는 근검절약형’ 뮤지션이지만 이번 음반의 커버는 유난히 그녀의 전설적인 데뷔작 ≪First Love≫(1999)를 닮았다. 일본 R&B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평가받는 그 음반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음반이 그녀의 가장 ‘내성적인’ 음반이거나 ‘자아 성찰적인’ 음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어쿠스틱한’ 음반이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짐작은 그렇게 잘 들어맞지 않았다. 적어도 외견상으로, 우타다 히카루의 신보는 2006년의 ≪Ultra Blue≫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음반이다. 하드디스크 용량이 다 찰 때까지 꽉꽉 눌러 담은 듯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난무하는 음반이라는 이야기다. ‘혼을 바쳤다’는 일본식 표현을 이런 데 쓰면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보였던 미국 진출 실패 이후부터 우타다의 음악에는 일렉트로닉의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새 음반에서는 그 지향성이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신보에는 듣기에 따라서는 ‘마니아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비트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특히 초반부와 중반부의 몇몇 곡들(이를테면 <Celebrate>)은 마돈나의 최근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응집력이 강한(즉 좀 부담스럽기도 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그걸 거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우타다의 팝적 감각이다. ‘통산 2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홍보 문구가 부끄럽지 않은 것도 그녀의 팝적 감각이다. 그 감각은 전형적인 우타다식 발라드라 할 만한 메가히트곡 <Flavor Of Life>나 <에반게리온: 서(序)>의 테마곡으로 쓰인 <Beautiful World>, 라면광고 CM송으로 사용된 발랄한 <Kiss & Cry> 같은 곡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뽑아내는 법을 잘 알고 있고, 그걸 ‘싸게’ 들리지 않게 하는 법도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타다의 그런 감각은 때로 깜짝 놀랄 정도의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직업적 냄새’가 거의 휘발된 것 같은 매력적인 곡인 <나는 곰>(ぼくはくま) 같은 경우가 그렇다. 2분30초가 채 안 되는 이 짧은 곡에서 우타다는 스튜디오고 기획사고 매니저고 2500만장이고 이혼이고 그런 것 따위 나는 모른다는 것처럼 편안하게 노래한다. 이 곡을 듣고 나서 커버 사진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짐작이 아주 틀린 건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