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Fun! Movie > VS
[VS] 어느 쪽 노후설계가 더 솔깃한가?
최하나 2008-04-10

<버킷 리스트> VS <그럼피 올드 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노인을 위한 노인은 있다. 허리는 굽고 눈은 침침하며 각종 질병이 시든 육체를 공습하지만 아픔도 쪼개면 가벼워지는 법이니, 노인과 노인이 짝패를 이룬 두편의 ‘실버 버디무비’를 비교분석해봤다. 죽음을 눈앞에 둔 채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는 <버킷 리스트>와 황혼에 찾아온 사랑으로 꺼졌던 열정을 지피는 <그럼피 올드 맨>. 세월은 유수와 같고 그 앞엔 장사가 없으니, 이들의 특출난 노후 설계를 적극 참조해보자.

<버킷 리스트>

<그럼피 올드 맨>

질병과 고독, 어떤 말년이 더 우울한가

<버킷 리스트> 승!

<버킷 리스트> 결국은 병원 신세다. 왕년엔 제법 총명한 청년이었으나 여자친구가 덜컥 임신하면서 대학을 중퇴한 카터는 40년간 자동차 정비공으로 온몸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가족을 부양한다. 퀴즈쇼에 채널을 고정하고 나홀로 정답을 중얼거릴 정도로 지식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결국은 일흔을 앞둔 나이에 암 선고를 받는다. 한편 평생 재산 증식에 한몸 바쳐 기어코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업가 에드워드는 인도네시아에서 공수해온 고가의 커피를 즐기며 황혼의 여유를 누릴 즈음, 역시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를 받는다.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해온 남자와 일신을 위해 뼈빠지게 일해온 남자. 사연이야 어찌됐건 죽도록 일해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튜브 꽂힌 몸뚱이와 길고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다.

<그럼피 올드 맨> 고독이 병이다. 은퇴한 뒤 홀로 살아가는 존과 맥스는 전자레인지용 냉동식품으로 삼시세끼 식단을 완성하고, 복권 당첨 프로그램에 눈알을 굴리며 길고 추운 밤을 삭인다. 낮 시간을 떼울 소일거리라곤 얼음낚시 정도뿐인데, 그나마 월척을 낚을 경우 증언해줄 동반자가 없으니 이 또한 쓸쓸하기 짝이 없는 승리다. 체스판을 돌려가며 일인이역으로 민망한 경합을 벌이거나, 세무서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초인종을 누를 때면 창문으로 황급히 탈출하다가 미끄러져 골절상을 입는다. 하지만 시장 후보로 나설 만큼 제법 잘 자란 아들이 자식 자랑의 재미를 쏠쏠하게 선사하고, 명절 때면 음식솜씨 좋은 딸이 찾아와 통통한 칠면조로 위장을 달래준다.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주름살이 두세개 정도는 펴질 알토란같은 손주가 재롱도 떨어주니,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다.

할아버지 짝패, 어느 쪽이 더 끈끈한가

<그럼피 올드 맨> 승!

<버킷 리스트> 자동차 정비공과 재벌한테 무슨 공통점이 있으랴. 평생 옷깃도 스치지 않은 채 남으로 살다 갔을 카터와 에드워드. 그러나 시한부 인생의 연대감이란 인종, 계급, 성품, 취향, 지성, 부동산 … 등등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다. 뒤엉킨 튜브를 풀어주고 링거대를 지팡이 삼아 병원 복도를 산책하길 수차례, 두 노인은 순식간에 상대방의 거무죽죽한 주근깨를 수줍게 칭찬할 만큼 느끼한 단짝이 되고, 아예 병원을 뛰쳐나와 둘만의 여행길에 오른다.

<그럼피 올드 맨> 사실 친구라기보다는 원수 같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평생을 이웃으로 살아왔지만, 젊은 시절 한 여자를 두고 사이가 틀어진 존과 맥스는 매일 아침 “안녕, 얼간이”, “안녕, 병신”이라는 가벼운 인사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기 집 앞에 쌓인 눈 열심히 퍼내 상대방 집 앞에 쌓아놓기, 차 뒷좌석에 생선 몰래 투척하기, 창문으로 리모컨 조준해 상대방 TV 채널 몰래 바꿔놓기 등 초등학생도 혀를 내두를 치졸한 다툼에 골몰하는 두 노인은 그러나, 하루라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관계다. 또 막상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위기가 닥칠 때면 지체없이 최상의 지원군으로 변모하니, 미운 정 고운 정 덕지덕지 붙은 두 노인네야말로 진정한 솔메이트다.

제2의 청춘, 누가 더 화려한가.

무승부, 사랑이냐 황금이냐…?

<버킷 리스트> 재력이 받쳐주는 친구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두 노인의 말년 여행길은 돈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넘쳐나는 에드워드 덕분에 초호화 세계 투어로 승화된다. 개인 전용기에 몸을 싣고 와인잔을 부딪치며 카드 게임을 하는 것은 가장 따분한 파트. 스카이다이빙으로 관절을 풀고, 세렝게티에서 사냥을 즐긴 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캐비어를 음미하고, 타지마할에서 장엄한 풍광에 눈물 좀 훔치다가, 피라미드로 거처를 옮겨 석양을 감상한다. 소박한 효도관광 정도를 기대하시는 대다수의 평범한 노년층께선 관람시 과도한 돈 지X에 혈압이 높아지실 듯. 항암 치료를 받던 환자들의 몸뚱이에서 어떻게 갑자기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무튼.

<그럼피 올드 맨> 연금에 의지하며 좀더 상식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과 맥스에게 대단한 호사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웃집에 미모의 여인이 이사 오면서 둘은 찌그러졌던 열정의 불씨를 되살린다. 어기적거리며 힘겹게 걸어다니던 노인들은 여인의 날렵한 허리를 잡고 스노 모빌을 탄 채 눈밭을 질주하는가 하면, 자극적인 음식을 못 먹는다며 몸을 사리던 것은 까맣게 잊고 계란 프라이에 타바스코 소스를 끼얹을 정도로 회춘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15년 만에 여자와 한 이불을 덮었으니, 그 정서적 충만감이란 초호화 세계 여행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