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저우하오가 인디다큐페스티발 참석차 방한했다. 저우하오는 중국 공산당에서 발행하는 신문 <신화통신>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2003년 다큐멘터리 <호우지에 타운십>으로 데뷔한 감독.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2006년작인 <고3>과 2007년 작품인 <약쟁이 아롱씨>다. <고3>은 입시문제를 통해 성공이란 틀로 정해진 중국 청소년들의 미래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작품이고 <약쟁이 아롱씨>는 마약에 찌들어 사는 남자 아롱을 따라다니며 찍고 찍히는 관계에 대해 탐구한 영화. 2년이 넘게 걸리는 제작과정이지만 저우하오 감독은 이미 두편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겐 아직 못다한 중국의 뒷이야기가 많이 있는 걸까. 저우하오 감독을 만나 두편의 다큐멘터리에 대해 물어보았다.
-<고3>을 구상한 출발점이 궁금하다. =중국에선 대학 입시를 높은 시험이란 뜻으로 고고(高考)라 부른다. 1977년 문화혁명 이후 매년 시행하고 있고 이때가 되면 교통도 통제한다. 아직 중국의 입시제도에 대해 찍은 사람이 없어 해보자고 생각했다. 보통의 다큐가 2∼3년이 걸리는 데 비해 ‘고3’을 소재로 한다면 시험이 끝나는 시점에 영화를 끝낼 수 있으니 1년 안에 제작도 가능하고. (웃음)
-영화 속 학교가 우등생들을 모아놓은 특수학교인가. =그렇지 않다. 중국의 평범한 학교다. 그게 중국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영화에는 수업 내용보다 선생님의 설교 모습이 훨씬 많다. =편집은 감독의 마음이니까. (웃음) 물론 수업을 하는 것도 찍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수학, 과학 이런 걸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영화에 학생들이 공산당에 가입하는 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나는 이런 부분이 이 영화에서 수업장면보다 더 중요하다고 봤다.
-<고3>도 <약쟁이 아롱씨>도 감독의 목소리가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 많다. =의도적으로 언제 목소리를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를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관객이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이다.
-<고3>의 경우는 관객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의 개입일 수도 있지만 <약쟁이 아롱씨>는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자체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약쟁이 아롱씨>를 마약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이건 마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아롱이란 남자의 관계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대상에는 어떻게 접근했나. =다큐멘터리에선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찍은 것을 허락받는 것도 중요하다. <고3>은 영화 속의 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있어서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모범생이라 선생님들이 좋아했고. <약쟁이 아롱씨>는 길을 걷다 우연히 찍어야겠다고 생각해 아롱씨에게 이야기했다. 단순한 마약영화라면 너무 진부해서 관계에 대한 영화로 방향을 튼 거고. 만약 그런 관계를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포기했을 거다.
-<약쟁이 아롱씨>에서 아롱씨는 감독에게 돈을 요구한다. 돈을 주면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겠지만 그건 아롱씨에게 마약을 건네주는 것과 같다. 윤리적인 고민은 없었나. =우선 돈을 주는 것과 영화를 찍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아롱도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돈을 달라고 하는 건 그냥 만나서 인사하는 것과 같았다. (웃음) 액수도 2만원 정도였다. 만약 그 액수가 커졌다면 내가 감당할 능력도 없었을 거고 애초에 관계가 성립하지 못했을 거다. 윤리적인 문제는 별로 관계없다고 본다.
-영화 후반부 자막에 “항상 나를 발견하는 건 아롱이었지 내가 아롱을 발견하진 못했다”라고 썼다. 그 부분에서 아롱에 대한 감독의 섭섭함이 느껴지더라. =일단 아롱이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고 전화번호도 항상 바꾸어서 찾는 데 힘들었다. 아롱이 나를 찾아야 영화가 성립될 정도였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홍콩이나 멀리 가 있을 때 아롱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아롱이 친구에게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게 아롱의 연락으로 이루어지니까. 자막에 섭섭함을 표현한 건 맞다.
-1년 차이로 만든 작품인데 두 영화의 소재가 전혀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글쎄, 다른 건 모르겠고 평범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영화로 찍고 싶다.
-전직 기자 출신이라고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기자 일은 재미가 없다. (웃음) 어떤 나라든 어떤 부서든 기자의 입장은 딱 한 가지다. 사장님의 입장.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 사장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신화통신>에서 일했는데 항상 신문사의 입장과 부딪혔다. 물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기자의 장점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2008년에 두편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면화>인데 어떻게 면화가 청바지로 만들어지는지를 따라가는 영화다. 사람들 모습에 초점이 맞춰질 거다. 다른 하나는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는데 중국 정부기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 =사람에 대한, 인생에 대한, 사회에 대한 태도다. 다큐멘터리도 글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스타일 안에 만든 사람이 보인다. 다큐멘터리라는 것 자체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두 글자로 말하면 역시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