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론 디아즈 인터뷰해봤어? ‘그건 부적절한 질문이군요’로 일관하지. 최악의 인터뷰이야.” “러셀 크로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군. 술집에서 싸움박질하지 말라고 스튜디오가 세트 안에 바를 만들어준 배우치고는 말이야.” “누가 뭐래도 톰 크루즈가 최고야. 어쨌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단 말이지.” 나와 같은 직업을 지니고 다른 땅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날 일이 간혹 있다. 할리우드의 특정 영화를 보고 감독, 배우를 단체로 인터뷰해야 하는 자리가 대표적이다. 항상 느끼는 바, 영화기자라고 모두 같은 건 절대 아니라는 사실. 말 많고 탈 많은 스타와 직접 대면하기를 밥 먹듯 하는 그들의 대화는 경청의 대상일 뿐이다. 외국 배우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그들이 작성한 인터뷰 자료를 뒤적이며 코멘트를 찾아야 하는 나는, 변방의 영화기자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전문지 출신이 아닌 탓에 나와 꼭 비슷한 표정으로 대화를 겉돌아야 했던 프랑스의 한 기자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심드렁함과 소외감이 절반씩 섞인 쓸쓸한 심정 때문이었을까, 공통의 화제를 찾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정치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의 대통령이 더 황당한가’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겠지만. 시작할 땐 가벼운 마음이었다. 당선된 지 몇주 되지 않아 이혼을 발표하고, 가수 출신 여자친구와의 요란한 연애를 즐기면서 연일 각국의 해외토픽난을 장식하는 프랑스의 사르코지로 말하자면, 근 몇 개월간 전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정계 출신 코미디언’ 아닌가. ‘중앙의 영화기자’들이 할리우드 스타를 화제에 올리듯, 각자의 대통령 역시 말랑말랑한 농담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막 취임했을 뿐인 ‘새내기 대통령 MB’가 취임 1년이 다 되어오는 사르코지의 적수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순식간에 ‘어린쥐’를 대한민국 대표 과일명으로 만들었던 영어몰입교육 등 개발독재식 정책들을 둘러싼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가 논란을 빚거나 중도 하차했던 당시까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를 가벼운 화제로 삼으면서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었다. 여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다 교황과의 회담에 지각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막말을 일삼으며, 노출증 걸린 스타마냥 사생활을 마구 공개하다가 최임 초기 65%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반 토막났다는 사르코지의 여정이 막판에 다다를 무렵. 지속적으로 수세에 몰리던 MB의 빅 카드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대운하 건설 계획.
그리고… 게임은 끝났다. 나라고 그처럼 싱거운 승리를 의도했던 건 아니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넓지 않은 국토를 개발 논리 하나로 토막낼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야심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그나마 사르코지에게는 보수적인 정책을 향한 여론을 시시껄렁한 사생활로 향하게 한다는 변명이라도 있지, 차라리 농담이었으면 싶은 굳건한 정책의 존재 의의를 무슨 수로 합리화한단 말인가. 한마디로, MB의 완벽한 승리.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정정당당하게 이겨본 경험이 전무하던 차에 이런 경험을 안겨주시다니. 누구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변방의 영화기자로 조용히 남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뻔했다. 제기랄. 시작한 이상 끝을 보겠다는 못 말리는 경쟁심이 문제다. 그렇지 않나요, 대통령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