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는 전혀 새로운 것, 화끈한 것 좀 가져와보라고 성화인데 그때마다 생각나는 글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뿐. 머리를 쥐어뜯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봐도 나오는 아이디어라고는 모두 퇴짜맞을 것이 예상되니 이 아니 난감할까. 뭐, 이와 같은 풍경은 광고회사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것이라 역시나 새로울 것도 없다.
이렇게 일이 안 풀리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아예 기본의 기본부터 뒤집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는데 최근 열심히 방송을 타고 있는 스카이 블레이드 CF도 그런 자포자기(?)의 초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광고란 모름지기 물건을 잘 팔기 위한 것이고, 그러려면 이 물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려주는 것이 기본이다. 한데 이 CF, 저게 물건을 팔자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한번 보면 잘 모르겠다. 그 짧은 15초 광고에 뚱딴지 같은 얘기만 늘어놓고 제품 설명도 뭐도 없는데다가 제품이 보여지는 컷도 딱 한컷. 게다가 팔고자 하는 물건은 아예 대놓고 ‘자매품’이라니? 이건 옥메와까(옥동자, 메가톤바, 와일드바디, 까만쿤) 같이 묶어 팔기 광고도 아닌 듯한데 말이다.
아아아아~ 하는 요상한 음악과 함께 낙하산에 매달린 폭탄이 상사의 책상 위로 날아간다. 6시에 정확하게 터지는 폭탄과 함께 빙긋이 미소 지으며 사무실을 빠져 나오는 넥타이를 맨 회사원. 직장인을 위한 퇴근 압박 시계를 암암리에 판매 중이란다. 그리고 직장인을 위한 자매품으로 살짝 휴대폰을 끼워넣는다. 보는 순간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나온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런 15초의 카타르시스랄까.
영상통화가 되는지, 터치 기능이 있는지, 카메라가 달려 있기는 한 건지 제품에 대한 어떤 얘기도 없는 그야말로 제품을 버린 이상한 광고지만 이 CF는 신선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이제까지의 스카이 휴대폰 CF들이 제품의 핵심 기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통해 나름의 ‘It’s different’ 스타일을 구축해왔다면 스카이 블레이드 CF는 제품을 버리는 역발상을 스타일화한다. 그렇다고 이 CF가 CF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터져나오는 실소와 함께 제품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도가 함께 쭉쭉 올라가지 않는가? 웃기기도 하고 제품도 보여주려 하다 어정쩡하게 되어버린 다른 CF들에 비하면- 최근 그런 CF의 대표적인 예로 조인성이 열연(?)한 페리오 치약 광고를 들고 싶다- CF 본연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제품 기능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제품의 타깃이라는 또 다른 기본에 온전히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CF는 제품의 타깃을 직장인으로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 전략을 보여준다. 직장인들이 암암리에 바라지만 제대로 말 못하는 발칙한 상상을 CF가 대신 보여주면서 그들의 호감을 얻겠다는 것. 제품을 구매할 만한 사람들을 한번 웃게 만드는 것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흔히 ‘집중과 선택’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 말하지만 이걸 제대로 잘 지켜내는 광고는 흔치 않다. CF라면 응당 지켜야 할 기본들이 있고 그걸 모두 집어넣어야만 한다며 욕심을 부리는데 스카이 블레이드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만 취한 것이 오히려 날을 세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가벼운 잽이 오히려 자신감있어 보이게 하는 부가 효과도 가져온다.
기본을 뒤집어보려는 용감한 시도를 한 동시에 또한 기본 중의 기본을 충실히 지켜낸 이 CF의 유쾌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 CF가 새로운 시리즈로 등장한다면 웃으면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
게다가 말이다. 왠지 그 직장인을 위한 퇴근 압박 시계, 어쩐지 ‘금요일 오후 5시에 전화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기획서 보자’는 광고주와 윗사람들에게 보내는 한맺힌 숨은 전갈 같아서 더 발칙하니 통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어쨌든 힘내라, 직장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