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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자 캐릭터이자 주제인 GP를 파헤치다
오정연 2008-04-01

GP 내부 실내세트 중 네곳 소개

지난해 11월 말 강원도 청평의 촬영현장에서 만난 김완식 PD 이하 제작진들은 GP 외관의 오픈세트부터 근처의 창고를 개조한 GP 내부의 실내세트의 구석구석을 설명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눈치였다. 한달 동안 단장한 600평 규모의 오픈세트부터 두달 동안 매달려 통째로 재현한 GP 내부의 미로 등 이들이 만들어낸 세트는 총 14개. 장춘섭 미술감독과 세트수퍼바이저인 Plus artwork의 황중현 대표에게 그중 네곳을 골라달라 부탁했다. 고성(古城)처럼 완고한 GP의 어느 한구석 허투루 넘기지 않았음을 알기에, 선택을 종용하는 심정도 편하진 않았다.

건물 전체를 완전히 새로 짓다_GP 상부

감독의 첫 번째 주문? “GP를 만들어달라”가 전부였다. 그러나 영화 속 세계의 전부를 아우르는 유일한 야외이자 가장 많이 노출되며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곳이니 이곳의 중요함은 미술팀 모두가 공유할 수밖에.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부터, 폐교 운동장, 동사무소 마당, 논밭 활용까지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촬영이 한창인 시점까지 고민한 끝에 지금의 공터를 발견했고 몽땅 새로 만들었다. 실제 GP 출신들의 인터뷰 결과 GP의 규모와 외관은 지형과 역할에 따라 저마다 다름을 알게 된 미술팀은 비교적 큰 규모라는 설정하에 일단은 리얼리티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내부로 향하는 육중한 철문부터 적절히 은폐된 초소, 널찍한 마당에 배치된 각종 소품까지, 내부에서는 약간의 농담을 섞어 “실제로 그 안에서 싸워도 될 정도”라고 말할 정도. 공간의 중요성에 비해서 작업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장춘섭 미술감독은 짐짓 불만이라는 듯 말한다. “다들 욕심은 있는데 그걸 고수할 여건은 안 되니까, 일정 부분은 포기하고 힘을 줄 부분만 주자, 이렇게 합의를 했다. 근데 막상 황 대표가 손을 안 놓고 촬영 끝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하더라.” 그간 한국영화 세트에서 질감의 디테일이 부족함을 항상 생각했다는 황중현 대표는 이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두꺼운 콘크리트의 오래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콘티를 미리 보고 카메라에 잡힐 것 같은 부분은 더 신경을 쓰는 식이었는데, 옆에 있다보면 자꾸만 미진한 부분이 카메라에 잡힐 것 같아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웃음)”

감독의 말: “사실 처음에는 작은 벙커를 짓고 그 안에서 저예산으로 만들 만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구상했다. 그런데 취재를 하고 시나리오를 써나가면서 일이 커져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커다란 컨셉이 정해지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스탭들에게 많은 것을 믿고 맡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좀 아쉽고 미안하다. 시간과 금전적인 한계 때문에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못한 게 있으니까.”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다_구복도

현재 GP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복도로, 수색대의 일원이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서고, 막판 클라이맥스의 추격이 이뤄진다.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서 헤맬 수 있으면 좋겠다”던 공수창 감독이 GP 내부에 대해 애초 가졌던 설정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자, 현실성을 우선시했던 다른 공간에 비해 미술팀 입장에서 영화적인 창의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곳이다. 장춘섭 미술감독은 <디센트> <크립> 등 지하를 소재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를 보고,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벙커나 영국의 오래된 지하철역의 사진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물, 세월에 온갖 기름이며 약품의 더께가 더해진 천장, 원래 빛깔을 알 수 없도록 다양하게 훼손된 기우뚱한 벽. 세트의 질감 면에서 최고 난위도에 해당하는 공간인데, 이를 위해 황 대표는 한달 동안 20명을 동원하여 아예 ‘직업훈련소’를 차렸다. “작업실에 평방 6m 되는 공간을 만들어서 네다섯 부분으로 나눠서 다양한 질감을 테스트했다. 구복도에 메인복도, GP 내부의 다양한 방까지 공간이 여러 개 아닌가. 일단 질감을 정한 뒤에 컬러를 확정하고, 마지막으로 조명까지 설치해서 어떻게 반사되는지도 살폈다. 콘크리트 건물의 질감은 있는 대로 다 표현해본 것 같다. 그냥 실제 벙커를 짓는 게 차라리 쉬웠을 거다. (웃음) 그래도 어쨌거나 풍부한 데이터가 확보될 수 있는 기회였다.”

감독의 말: “군대 시절 GP에서 하룻밤을 보낼 일이 있었는데, 벙커가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더라. 그 안에서 길을 잃는 신병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인간의 심연 같은 미로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스테디캠을 사용해서. 그런데 편집을 거치면서 한컷으로 촬영한 분량을 쪼개거나, 윤 하사가 길을 잃는 장면처럼 드라마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많이 생략됐다. 스탭들이 의욕을 불태웠던 걸 생각하면 걸리지만, 어쩌겠나.”

리얼한 질감을 디테일하게 살려내다_화장실

화장실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총격전. 타일이 깨지고, 그 밑의 회벽에도 구멍이 뚫리면서 파편이 튈 것이다. 질감에 ‘목숨을 건’ 황중현 대표가 욕심을 낼 법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면에서는 그냥 합판을 대서 구멍이 뚫리면 메우고 금방 재촬영에 들어간다. 하지만 촬영상의 트릭도 별로 없는 이 장면에서 디테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벽에 총이 맞는 리얼한 재질을 표현하고 싶었다. 특수효과팀과 함께 테스트하면서 다양한 혼합재료를 사용해봤다. 보이기에도 그럴듯하면서 파편이 배우에게 튀어도 다치지 않는 재료여야 했고, 적절한 화약의 양도 중요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야심이 아무리 투철해도 일단 NG가 나면 1, 2시간씩 세팅 시간을 줘야 하는 방식을 감독 이하 다른 스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무용지물. 그러나 황 대표가 처음 이와 같은 질감을 제안했을 때 머뭇거리고 난색을 표했던 연출부들도 직접 눈으로 결과를 확인한 뒤에는 거기에 스케줄을 맞춰줄 정도였다. 촬영감독의 경우 옛날이 속편했다며 짐짓 불평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덕분에 “<매트릭스>의 총격전 버금가는” 육중하게 리얼한 느낌이 살았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감독의 말: “일단 총격전이 가능하려면 웬만한 공간이 확보됐어야 하니까 애초에 크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농담처럼 소대가 아니라 대대가 써도 될 정도라는 말도 있었지만. (웃음) 굉장히 오래됐지만 청소를 열심히 해서 깨끗한 느낌의 타일, 회벽이 되길 바랐다. 새로운 시도 때문에 촬영의 진행이 느려진 건 분명히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함께 식사하던 병사들이 죽어 다시 모이다_식당

창의적인 스탭은 영화의 국면을 바꾼다? 기존의 GP 대원이 죽어 있는 현장에 들이닥친 수색대는 어서 시체를 수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황급히 시체를 옮긴다. 그러나 악천후에 출발한 이들은 이내 GP로 복귀하는 처지가 되고 어딘가 시체를 다시 부려야 할 상황. 어느 공간이 좋을까를 묻는 감독에게 연병장이 아닌 식당을 권한 것이 장춘섭 미술감독이었다. “평상시는 전우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곳이지만, 나중에는 그 전우들이 죽어서 다시 모인다는 아이러니.” 게다가 테이블과 세면대 등 구조 자체도 해부실 혹은 시체부검실과 흡사한 면모가 있지 않던가.

감독의 말: “원래 군대 식당에 가면 식탁에 비닐 같은 게 덧씌워져 있고 분위기가 묘하다. 한눈에도 군대 막사라는 느낌을 주려고 한다면 그런 걸 해야 하는데 애초에 촌스러움을 걷어내고 싶었다. 대신 차가운 메탈 느낌으로. 시체를 식당에 부리면 좋겠다는 미술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러면서 식탁도 지금처럼 큼직큼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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