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3월30일(일) 오후 2시20분
1970년 프랑스의 어느 마을, 그곳은 아이들의 잔꾀와 장난과 웃음과 상처로 가득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과 소녀는 귀엽게 사랑하고,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은 어딘가 어설프고, 남몰래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는 가슴이 아프고,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온 소년은 아픔을 감추기 위해 거칠게 군다. <400번의 구타>보다 낙관적이며 여유로운 <포켓 머니>는 중년이 된 프랑수아 트뤼포가 어린이들과 함께 만든 영화다. 특별한 사건은 없으며 그저 아이들의 대화와 우연한 행동들로 진행되는 영화는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풍경’이라고 불릴 만하다.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서 가장 적절한 표정과 말투와 몸짓을 이끌어내는 트뤼포의 연출력은 감탄할 만한데, 그는 실제 촬영과정에서 아이들의 즉흥적인 행동에 맞춰 각본을 수정했다고 한다.
극적인 사건이 없는 만큼 그 자리는 아이들의 엉뚱한 일상으로 채워진다. 어른의 눈으로 재단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소통,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판타지는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풍부한 유머와 상상력으로 빛난다. 그러면서도 <400번의 구타>의 감독답게, 혹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답게 아이들을 보는 영화의 시선은 무조건 순수함을 예찬하며 향수하거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왠지 불량하게 보이며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겉돌던 소년이 사실은 부모에게 학대받아온 아이였음이 밝혀질 때, <포켓 머니>는 가슴 아픈 사실주의적인 영화가 된다. 학교 선생님인 리셰는 마치 트뤼포를 대변하는 듯, 아이들의 인권을 아이들 대신 강변하는 인물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의 풍경에 대비되는 어른들의 풍경 혹은 부모의 풍경도 공존한다. 무관심하거나 억압적이고 이기적이거나 잔인한 어른들의 딱딱한 말투와 행동이 보인다. 영화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수많은 얼굴들로 끝나는데,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 어른은 그래도 나쁜 어른은 아닐 것이다. 아니, <포켓 머니>는 분명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어른이 만들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