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집에 살수록 TV를 적게 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서 2007년 한해 동안 전국 1550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80평 이상 주택에 사는 청소년은 하루 평균 13분가량 지상파 TV를 보는 반면에 20평 미만 주택에 사는 청소년들은 67분으로 5배 이상의 시간을 TV 시청에 할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 밖에 다양한 변수로 표본을 분석한 끝에 “부모의 소득이 높고 고학력일수록, 전·월세가 아닌 자택에 사는 청소년일수록 TV를 덜 본다”고 결론지었다.
왜 그럴까? 집이 넓을수록 TV와 소파 혹은 침대 사이가 멀기 때문에? 보고서는 ‘부모의 학습 관여도가 높아서’라고 했는데, 쉽게 말해 부잣집 아이들일수록 TV를 보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무척 많다는 얘기 되겠다. 학원 가고 과외 받고 숙제 하면서 짬짬이 게임과 친교 활동에도 힘써야 하니 TV 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국민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인 3시간을 훨씬 웃도는 TV 시청시간을 자랑하는 내가, 20평 조금 넘는 전세 주택에 살면서 이력서 취미란에 망설임없이 ‘티브이 보기’라고 써넣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부잣집 청소년들과는 달리 나는 TV 보기 외에 별다른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런 내가 TV없이 살아간다면?
EBS <리얼실험프로젝트 X>(사진)에서 실시한 ‘티브이 끄기’ 실험이 좋은 보기가 될 것 같다. 13가구 32명의 주민이 사는 전남 완도군 다랑도는 주민들의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이 4시간30분인 곳이다. “자식보다 TV가 낫다”고 여기는 다랑도 주민들이 한달 동안 TV를 껐다. 금단증상은 금세 나타났다. 실험 전엔 거의 없었던 ‘화투 인구’가 섬 주민의 절반으로 늘었고, 섬 전체에 음주가무가 크게 성행했다. 부부 사이 대화시간이 늘어난 만큼 부부 싸움도 늘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재경 PD는 “주민들이 왜 이런 실험을 하느냐며 제작진에게 항의해 실험이 중단될 뻔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달 뒤 다랑도 주민들에게 생긴 변화를 종합해 보니,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늘고 뭍에 사는 가족과 친지에게 더 자주 안부전화를 하며 라디오와 신문,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달 동안 TV를 대체했던 모든 것들이 실험 뒤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을 것이다. 섬 지역 평균 TV 시청량이 도시보다 많은 것은 섬 사람들이 TV 보기를 능가하는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기회가 도시 사람들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470억원짜리 드라마와 회당 1천만원을 웃도는 버라이어티쇼를 매일 공짜로 보여주는 TV를 가난한 우리가 왜 마다해야 하는가. 이래저래 TV는 가장 값싸고 손쉬운 서민의 오락거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물론 2013년 디지털방송이 전면 시행돼 값비싼 디지털TV 없이 방송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