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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별] 성숙함이 애쓴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8-03-27

<숙명>의 배우 박한별

박한별의 출연작을 훑다가 눈을 의심했다. <숙명>이 두 번째 영화라니.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찍은 게 도대체 언제인데. 게으르고 무던한 관객이었다는 자책으로 그냥 넘길까 했는데, 옆의 누군가가 또 그런다. “정말 두 번째 영화 맞아. 다시 확인해봐”라고. 그러니 맨 먼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영화 안 찍고 뭐하셨나요?”“ 드라마만 하겠다고 한 건 아닌데. 딱히 영화는 하지 말아야지 그랬던 것도 아니고. 영화든 드라마든 구별 안 했다고 봐야죠.” 그렇다면 <요조숙녀> <한강수타령> <환상의 커플> <푸른 물고기> 등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와 달리 <숙명>의 은영 또한 배우에게는 필모그래피의 똑같은 한 조각일 따름인데, 무슨 이유로 “후시녹음 때부터 미치도록 떨린다”고 하는 것일까. 역시나 영화 홍보성 멘트? 완력 빼고는 가진 것 없는 남정네들의 허기진 구토를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은영을 만나서 그녀가 무엇을 얻었는지에 관한 대답은 인터뷰가 꽤 진행된 이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오디션 vs 미팅

“<여고괴담…> 오디션 때는 뭘 시켰더라. 이다해씨가 있었고, 구혜선도 있었고, (남)상미도 있었고, 그리고 저랑 지호 언니랑 있었는데. 아마 제 앞 순서가 이다해씨였어요. 근데 즉흥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죽은 이를 앞에 둔 것처럼 펑펑 우는데. 그거 보면서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저는 똑같은 걸 시키면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행히 저한테는 밝은 노래 부르면서 울어보라고 했어요. 그게 더 어렵지 않냐고요? 너무 떨리니까 하라는 대로 다 되던데요. <숙명>은 감독님하고 미팅한 게 아마 지난해 3월쯤일 거예요. 사실 저 시나리오 보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성숙한 이미지라는 게 애쓴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 자리에 나가서도 자신감이 없었어요. 근데 김해곤 감독님이 눈치챘는지 캐릭터 설명 같은 건 안 하세요. 계속 자신감만 심어주시는 거예요. 미팅 한번 할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는데. 그 덕분에 이젠 이건 내가 할 수 있겠구나, 없겠구나 미리 단정 안 하게 됐어요.”

얼짱 vs 안티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제의를 받은 건 중3 때부터였어요. 가수하라고. 그냥 흘렸죠. 한국무용이 힘들긴 하지만 쭉 하던 거니까. 그러다가 고등학교 가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주위에서는 되게 말렸죠. 무용해서 그냥 대학 가면 되는데 뭐하러 그러느냐고. 오기 같은 게 생기던데요. 연기한다고 해서 내가 실패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거봐, 거봐 그런 말들을 하게 될 상황을 생각하니까. 그래 나중에 아무 말 못하게 만들자 뭐 그런 오기. 근데 <여고괴담…> 끝내고 <한강수타령>까지 하고 나니까 이 일이 힘든 거예요. 인터넷에 악플 달리고. 그때부터 스크롤바를 안 내렸어요. 뒤에 가서 내 욕 할까 싶어 친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고. 당찬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매사 주눅들고. 다시 22살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싫어요. 우울증에 대인기피증에. 푹 쉬면서 저랑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거나 늦게 시작한 친구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걸 보면 많이 불안했고. 그때는 연예정보 프로그램 나오면 급우울 모드가 됐다니까요.”

여고 vs 조직

“<여고괴담…> 때는 저도 고등학교 갓 졸업했고. 다들 어렸잖아요. 선생님 빼고는 다 애들이었으니까. 현장 가는 게 학교 가는 거였어요. 여고생들 정신없이 시끄러운 거 아시죠. 촬영하러 간다기보다 놀러간다는 느낌이 컸죠. 근데 <숙명>은 내용이나 분위기가 무거잖아요. 가라앉을 수밖에 없죠. 아마 다른 분들은 제가 굉장히 내성적이라고 생각하실 거에요. 말을 거의 안 했으니까. 선배님들 사이에 끼는 것도 좀 어려웠고. 회식요? 그런 거 없었는데. 나만 뺐나. 제 말투가 평상시에는 애 같잖아요. 김해곤 감독님은 아시겠지만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는 독특한 분이신데. 저한테는 욕도 안 하시고. 외려 어려워하시고.

칭찬해주면 전 더 잘하는 스타일인데, 매번 오케이를 외치셔서. 나중에는 칭찬을 칭찬으로 못 들었죠. 기죽지 말라고 그러시는 건가 아니면 못해서 그냥 그러시는 건가 헷갈렸어요.”

19 vs 24

“열아홉 때랑 지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그때는 감정이고 뭐고 그런 걸 전혀 몰랐으니까. 누군가 일러주면 따라서 하는 게 옳은 거였으니까. <숙명> 때는 감독님이 첫 대본 연습 하고 나서는 책 펴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네가 편한 대로 의지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정해놓은 것 없이 가다보니 전에는 몰랐던 감정에 더 충실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는 일을 해도 인터뷰를 해도 다 감사해요. <환상의 커플> 때부터 그런 것 같아요. 전에는 피곤하면 짜증 부리고 그랬는데. 푹 쉬고 나니까 달라지던데요. 다만 여전히 대중이 저를 볼 때는 외모만을 보려고 하니까 다른 걸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여성스러운 거 말고. 털털하고 망가지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말고 여자들이 좋아할 캐릭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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