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를 만들며 영화 보는 순간의 감흥을 느낀다”
<올드보이> 최민식, <겨울연가> 배용준 피겨 만든 원형사 고준 인터뷰
-어떻게 영화 피겨를 만들게 되었나.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는 본격적인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라난 1세대다. 어려서부터 프라모델 같은 모형을 만들기 좋아했고 영화를 좋아했었다. 좋아하는 배우를 현실에 존재하는 모습으로 창조해내고 싶었는데 미술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피겨를 만들 수 있었다.
-독자들이 피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할 것 같다. 간략하게 매뉴얼을 공개한다면. =우선 ‘스컬피’라는 점토로 원형을 제작하고 오븐에 굽는다. 오븐에 구우면 어느 정도 딱딱해지는데 실리콘을 이용해 ‘우레탄레진’이란 상태로 복제를 뜬다. 석고상을 뜨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복제가 완성되면 아크릴 물감을 비롯한 각종 도료로 직접 채색을 한다.
-2004년 제작된 <올드보이>의 최민식 피겨는 한국 영화계 최초로 이뤄진 피겨와의 콜레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그때 일을 간략히 이야기해 달라. =본격적인 상품화 시도라기보다는 DVD 출시를 하면서 한정부록으로 피겨를 추첨해주는 이벤트였다. 사실 상품이든 이벤트든 영화사가 피겨 제작에 투자하는 비용은 너무 적다. 개인적으로는 나에 대한 PR이라 생각하고 진행했고 결과는 흡족했다.
-일본 내수판매를 목적으로 <겨울연가>의 배용준. 그 밖에 송승헌이나 이병헌 등의 한류스타 피겨를 제작했다고 들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는 없었나. =한류스타들의 피겨를 제작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피겨 제작 그 자체보다는 외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많다. 급하게 한류 붐이 불다보니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 피겨 제작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소속사쪽에서도 부가판권시장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오히려 배우와 드라마의 라이선스는 의외로 쉽게 해결했다. 시스템이 문제지 피겨로 제작할 때의 저작권은 의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피겨를 만드는 입장에서 영화피겨의 산업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피겨가 부가판권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제작이 용이한 인쇄상품들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피겨 같은 입체상품은 상대적으로 시안과 제작이 오래 걸리고 까다로운 편이라 관심은 있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제작되더라도 적은 투자비용으로 무리하게 제작하다보니 오히려 제살 깎아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선례가 되어 자금줄이 막히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시장 상황에 비해 한국 원형사들의 실력은 세계 최정상급이다. 이런상황에서 배용준 피규어와 송승헌 피규어는 이례적으로 제대로된 투자와 정식라이센스를 갖고 제작된 좋은선례가 될 수 있었다. 이번일을 바탕으로 입체상품과 투자규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어쨌든 한국에서 피겨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국은 취미가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사는 데만 급급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수집 문화도 많이 활성화된 것 같고.
-영화 피겨를 만드는 특별한 이유, 영화 피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나. =다른 대상도 많은데 영화 피겨를 만드는 이유는 영화에서 가장 많은 감동을 받아서일 것이다. 영화 피겨는 영화를 틀어놓지 않고도 그 영화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극장에서는 2시간 남짓밖에 즐길 수 없지만 피겨는 만들면서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그 감흥을 즐기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피겨에선 보바펫이 각광받는 캐릭터이다”
<스타워즈> 피겨 모으는 수집가 이영석 인터뷰
-수집한 피겨의 수가 상당하다. 소장품 수가 어떻게 되는가. =웬걸. 나보다 더 많이 모은 사람도 주위에 많다. 세어보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모으다보면 모은 개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피겨란 취미를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어릴 때 미국에 살았는데 그러다보니 일찍부터 피겨를 접할 수 있었다. 1996년 하스브로의 3.75인치 ‘파워 오브 더 포스’ 시리즈를 모으면서 본격적으로 <스타워즈> 피겨를 모은 것 같다.
-다른 영화도 많은데 <스타워즈> 피겨를 주로 모으는 이유는 뭔가. =그야 <스타워즈>란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서 영화를 수백번 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피겨를 수집한다. <스타워즈> 피겨는 그 종류가 무척 방대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끝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스타워즈> 시리즈에 섣불리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된다. (웃음)
-<스타워즈> 시리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단연코 보바펫이다. 영화에서는 몰랐는데 피겨를 모으면서 에메랄드그린 계열의 색감과 보바펫이 착용하고 있는 아머나 백팩 특유의 디자인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트루퍼들도 좋아한다. 제다이 기사들이나 요다같이 비중있고 선한 인물보다 보바펫처럼 악역이나 주목받지 못한 존재가 좋다.
-보바펫 역의 대니얼 로건은 피겨 세상에서는 영웅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오래된 <스타워즈> 수집가들은 대부분 애장품 1순위로 보바펫을 꼽는다. 스크린 속에서는 천대받은 캐릭터였는데 피겨 세상에서는 각광받는 캐릭터다. 피겨를 수집한다는 것은 영화를 다시금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영화를 볼 때는 그 캐릭터에 대해 몰랐다가도 피겨를 구입하면서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면 한번 더 영화를 보게 된다.
-피겨가 영화의 생명력을 더 길게 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피겨는 끊임없이 영화를 재생산해낸다. 쉴새없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하나의 세상과도 같다고 할까. 그것은 곧 <스타워즈>란 잘 만든 영화가 가진 생명력이기도 하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국내의 피겨문화 때문에 수집에 어려움은 없나. =뭐 특별히. 모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모을 수 있다. 단 국내에서 피겨를 접할 기회가 적다는 게 아쉽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영화 피겨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많다. 피겨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피겨를 접할 공간도 많아졌다. 올 여름에는 부산 해운대에 국내 최초로 <스타워즈> 전용 피겨 박물관도 생긴다.
-피겨를 모으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팁 한 가지만 이야기해 달라. =같은 캐릭터를 모으더라도 제조사마다 다른 그 미묘한 차이를 찾아보길 권한다. 이를테면 보바펫은 제조사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미국 사이드쇼는 기막히게 원형은 잘 뽑아냈지만 도색이 좀 엉성하고, 일본 타카라는 세밀함은 없지만 전체적인 프로포션이 좋다. 일본의 메디콤토이는 애니메이션적인 색채를 20% 정도 가미해 새로운 맛을 주고 홍콩의 핫토이는 일종의 부록 같은 루즈가 풍부해서 좋다. 이런 차이를 비교해 보고 또 원본격인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언제고 새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