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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미모는 권력이다?

화장품 광고의 왕후 열풍, 다나한과 후 공진향 CF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다 자라버린 불혹의 나이를 넘긴 주부들을 모아놓고 자아찾기에 관한 강연을 했더란다. 거기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시 한번 짓는다면 어떤 이름으로 할 것인지에 관한 과제를 내주었다든가. 그리고 한 아주머니가 ‘김왕비’라는 이름을 들고 왔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지친 자신의 처지가 꼭 궁중의 무수리 같은 기분이 들어 다음에 태어나면 중전마마처럼 대접받고 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이름이었다고.

그래, 여자라면 누구나가 왕비나 공주처럼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꿈을 꾸지. 그리고 여기, 왕비도 아니고 무려 왕후를 들고 나온 두편의 CF가 있다. 그리고 그것 모두가 다름 아닌 화장품 CF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도함과 화려함과 기품으로 대변되는 왕후의 자리. 고개 숙여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 사이를 고개를 치켜든 채 유유히 걷는 우아한 왕후는 ‘피부는 권력’이라 말한다. 얼굴에 잡티있는 것들이 어디서 까불어 하는 표정을 한 채.

또 한명의 왕후는 이런저런 복잡한 연애 사슬의 최고봉에 서 계신 모양이다. 대한제국풍의 옷을 잘 차려입은 칼 찬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비운의 왕후’로 우뚝 서 있다. 하지만 그 표정엔 절대 비운이 서려 있지 않다. 대신 정복자의 엷은 미소를 띠고 계신다.

최근 한방 화장품의 대세가 사극 열풍을 탄 고급스러움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CF들이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소재로 선택한 것이 우연찮게도 비슷하게 ‘왕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재를 풀어간 CF의 흐름에 겹쳐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권력과 화장품’의 상관관계다. 당신도 이 화장품을 쓰라. 아름다워져서 권력의 최고봉인 왕후를 꿈꾸어라.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미모가 당신에게 권력을 가져다주리라. 구혜선을 내세운 ‘다나한’ 같은 경우, 이전 CF에서 아예 대놓고 ‘(내가 더 예쁘니까) 왕후의 자리를 내놓으시지요’라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남성에게 자동차를 부와 권력의 상징물처럼 여기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부와 권력이 미모로 치환되는 것과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나 여기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남성에게 차가 권력의 부상처럼 딸려오는 것이라면, 여성의 미모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사실이다. 다들 알고 있지만 쉬쉬하던 속세의 정설을 CF에서 대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성에게 아름다운 얼굴이란 곧바로 좀더 나은 위치를 보장해주는 무기란 사실 말이다. 예전의 화장품 광고들이 그저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그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으로 제품을 팔아왔다면, 이제는 그 아름다움에 하나를 더 추가한 셈이다. 아름다움은 기본이고 그것으로 얻게 되는 권력이 ‘워너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CF들이 먹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똑똑하여 아무리 비싼 화장품을 쓴다 하더라도 일반인이라면 얼굴을 최소 리모델링, 대개는 재건축을 하지 않으면 그런 연예인스러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최소 피부 나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족스럽고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에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만족감을 넘어 선망이 되고, 선(善)이 되고- 착한 얼굴과 몸매란 말을 상기해보자 - 이제는 권력이 되는 시대까지 왔다. 뭐, 이건 최근 남성에게도 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지만. 강남의 성형외과가 한집 건너 하나인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게야. 왕후를 넘어선 다음 화장품 CF는 뭐가 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이고, 이런 시대를 어찌 살아야 할지 조금은 걱정된다. 평범한 얼굴로 안 먹힌다면 이제 패션으로 공략해야 하나. 그것도 몸매와 길이가 되어야 하는 건데.

이래저래 다 돈 들어가는 일투성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