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와 시청자가 공유하는 ‘완전 소중한’ 캐릭터 군단에 애완의 대상도 세부 장르로 침투했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만만하게 부를 애칭 하나 획득하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처럼 여겨지는 게 요즘 방송가의 풍경. 하찮든지 허당이든지 유치하든지 뚜렷한 캐릭터를 가져야 시청자의 적극적인 관심권 아래 머물 수 있다. MBC <무한도전>의 수선스럽고 빈틈 많은 남성들이 국민의 프렌즈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요즘 KBS2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사람들도 먹고 자는 문제에 티격태격하는 유아적인 속성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올리고 있다. 숭배의 대상보다 같이 놀거나 잔소리를 건네고 싶은 존재를 발견해 우월한 시선을 맛보는 게 TV라는 가상의 세계를 유쾌하게 즐기는 한 자세다.
그런데 한술 더 떠 ‘1박2일’ 멤버들 곁을 맴도는 복슬복슬한 수컷견 ‘상근이’마저 그 사례에 곁들여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전지전능해지는 시청자의 눈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MBC 일일극 <아현동마님>에도 겹치기 출연 중인 그는 극중에서 종종 주인의 침대 중앙에 떡하니 뻗어계시곤 한다. ‘1박2일’에서도 ‘은초딩’(은지원)의 천적으로 굴며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설정에 의한 것이든 자연스러운 상황의 발로이든 몇 가지 행동 양식을 보면 ‘1박2일’ 제작진의 말마따나 ‘상근이’는 ‘냉소적 기질이 다분한 방관자’의 성격을 지녔을 수 있다. 그러나 ‘상근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캐릭터 놀이는 팩트와 리얼리티를 뛰어넘기 십상이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들이 말풍선 등에 인간의 시선을 개입하는 의인화 작업으로 아는 척, 친한 척 굴듯 ‘상근이’에게도 자의적인 해석을 곁들여 일방적인 애정을 표현하고 재치의 유희를 누리고 있다. 애완동물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입이야 인지상정에 해당하지만 ‘상근이’라는 광장의 펫은 근거리의 스킨십도 없는 소통 불가의 상대.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유용하게 애완의 여지를 확장하며 조종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MBC 주말극 <천하일색 박정금>의 ‘경수씨’(김민종) 캐릭터도 가련한 애완남의 성분을 함유했다. 자신을 입양해 길러준 부모에 대한 의무감에 ‘사공유라’(한고은)와 정혼한 그는 ‘박정금’(배종옥)에게 동병상련과 안락함을 느끼면서도 주도적으로 애정의 화살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경수씨’는 살포시 치켜뜨는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일쑤다. 박력과 우수를 겸비한 기존의 왕자들과는 차이가 있는 그의 선량한 우유부단함은 다른 방식으로 모성을 추동질한다. ‘경수씨’를 보면 왠지 그의 마음을 먼저 간파해 보듬어줘야 할 것 같다. ‘박정금’의 시원시원한 ‘버럭’소리와 언밸런스를 이루는 그의 나직하고 차분한 움직임은 늘 충직하게 내 곁을 지켜줄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인터넷에 나도는 ‘경수씨’에 대한 일부 시청자의 해설은 창조자인 작가를 넘어서는 몰입력도 엿보이고 있다.
만들어진 캐릭터를 감상하는 수용자나 완성되도록 돕는 조언자에서 더 나아가 요즘 시청자는 TV 속 군상을 아예 장악하려 하고 있다. 갈수록 세지는 시청자의 파워 아래 애완의 캐릭터도 다양한 빛깔을 빚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