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해주실래요? <한겨레>에서는 편집국장을 뽑을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대표이사가 편집국을 총지휘할 수장 후보를 지명해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찬반 의사를 묻는 절차다. 이른바 ‘편집국장 임명 동의제’. 편집국장 후보는 자신의 언론관과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 앞으로 지켜나갈 보도의 방향과 원칙 따위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더불어 기자들에게 ‘청문회’를 당한다. 이 자리는 그야말로 심층 기자회견장이 된다. 기자들은 세밀한 부분까지 질문하며 검증의 칼을 들이댄다. <한겨레>에서는 2008년 2월, 그러니까 이달 말에 그 ‘이벤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등에서도 채택 중인 제도다. 일방적인 임명제와 직선제 양쪽의 폐해를 모두 비껴가면서 편집국장 선출의 정당성을 꾀하려는 의도이리라.
만약 새 학기를 앞둔 초·중·고교에서도 그걸 따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담임교사 임명 동의제’를 상상해본다. 과거에 학생들을 함부로 대했던 선생님을 반대표로 심판하는 거다. 학생들이 청문회를 통해 공개적인 심층인터뷰의 자리를 갖는다면 재밌지 않을까? “뽀뽀는 언제 처음 하셨어요?” “학교 바깥에선 무슨 재미로 사시나요?” “촌지를 받아보신 적 있나요? 저희 부모님들이 주면 받으실 건가요?” “저희를 때리면 가슴이 아프신가요, 아니면 스트레스가 풀리시나요?” 임명 동의 투표에서 미끄러진 선생님들은 한해 동안 절치부심하며 다시 제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가을, 한가위를 앞두고 이 난에 ‘부모 심층인터뷰’라는 칼럼을 썼다. “피붙이인 부모가 어떻게 살았는지, 작정하고 캐묻다보면 흥미진진한 역사가 파헤쳐진다”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이 실린 뒤 몇몇 독자들이 “공감한다”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그중엔 부모 인터뷰를 통해 수십년간 모르고 지냈던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됐다는 사연이 많았다. 그러면서 어떤 독자는 ‘선생님 심층인터뷰’에 관한 글도 써달라고 했다. 사제간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더 풍부해져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앞에서 그려본 ‘담임교사 임명 동의 인터뷰’의 살풍경은 과도하다. “대한민국 교육 망조 들었다”는 개탄이 쏟아질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선생님 심층인터뷰는 나쁘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다.
이번에는 선생님들이 정신과 의사와 심층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深層’ 인터뷰이자 ‘心層’ 인터뷰다. 교사를 모독하려는 게 아니다.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마음의 피를 흘리는 우리는 모두 가끔씩 한번 신경정신과 병원에 가봐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어떻게 ‘정신적 품위’를 지키며 살 것인지 코치를 받는 게 좋다. 정기적인 신체건강 검진을 받듯, 마음의 바닥에 내시경을 집어넣는 정신건강 검진을 받는다 생각하고 말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인생주기마다 ‘결정적 대상’(Critical Person)이 있다고 말한다. 그 대상과 맺는 관계의 질에 따라 심리적 성장이 촉발되거나 완전 결딴나는 등 치명적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초등학생의 경우 그 ‘결정적 대상’은 선생님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건너갈 때는 자기 정체성에 관해 극도의 혼란과 불안을 겪는다고 한다. 이때 선생님은 ‘신’으로 존재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의 계시’로 통한다. 그 계시는 아이들이 인격을 형성하는 복음이 되기도 있지만 독약이 될 위험도 있다. 극히 일부 감정과 정서가 불안한 ‘신’일 경우에 말이다. ‘촌지’는 그 신을 100% 믿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내 자식이 신에게 버림당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교사는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이다. 어리고 철이 없으며 망둥이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녀석들로 인해 오늘도 그들은 시험에 든다. “체벌은 절대 안 된다”는 게 바른말이지만, 때로는 체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교사의 하소연을 무작정 반박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함무라비 법전과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적혀 있었다는)는 확신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요즘 정신건강 검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느는 추세라고 한다. 처음에는 최고경영자인 사장들이 심리 전문가와의 심층인터뷰를 받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자 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생겼다. 최고경영자와 팀장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되면 그 혜택은 말단 사원들에게까지 돌아간다. 위에서부터 조직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뛰어든 때문이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며 학교 선생님들이야말로 그런 프로그램에 가장 필요한 대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본인은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척한다. 그래서 취임도 하기 전에 ‘영어’를 사회적 화두로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 1/100이라도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게,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의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