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방영(XTM 방영 예정)
왼쪽부터 사라 코너, 존 코너 그리고 미래에서 온 여성 터미네이터인 카메론.
약 6개월 전 616호의 본 칼럼에서 미드로 제작되고 있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즈음 인터넷에 유출되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파일럿 에피소드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지난 1월13일 일요일 폭스채널을 통해 드디어 방영되었다. 그리고 <터미네이터>라는 프렌차이즈의 힘에 팬들의 오랜 기다림이 더해지면 어떤 파괴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시청률 11.1%, 점유율 16%를 달성하면서 무려 미국에서 1840여만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운 것. 시청률 11.1%는 지난 3년간 공개된 모든 드라마의 오프닝 성적을 뛰어넘는 것으로, 폭스채널 자체적으로는 2000년 <말콤 인 더 미들> 이후 최고의 오프닝 시청률을 기록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비단 시청률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미디어 평들도 호의적이었던 것. <USA 투데이>는 별 4개 만점에 3.5개를 주면서 ‘smart, tough and entertaining’이라는 좋은 형용사들을 선사했고, <뉴욕타임스>는 ‘한동안 다시 나오기 힘든 인간적인 SF어드벤처’라는 평을 내렸다. <LA타임스>는 한술 더 떠 ‘주어진 운명과 주인공들 사이의 섹스피어적인 고찰’이라는 찬사를 보내기까지 했으며, 업계 시각을 대변하는 <데일리 버라이어티> 역시 ‘인상적인 다양한 액션이 현실감있는 특수효과와 잘 어울렸다’라는 호의적인 문구로 첫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시청자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1999년을 무대로 시작한 뒤 시간여행을 통해 2007년으로 주인공들이 이동해 오는 설정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포럼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영화 3편에서 1997년 사라 코너가 죽은 것으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1999년임에도 불구하고 사라 코너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린다 해밀턴이 출연을 고사함으로써 어색한 설정으로 만들어진 영화 3편을 무시하고, 좋은 평을 받은 영화 1, 2편의 세계관만 제작진들이 따랐다라는 것이 다수에 의해 합의된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런 호의적인 반응은 흥미롭게도 ‘Gnothi Seauton’(너 자신을 알라)이라는 절묘한 제목으로 방영된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확연히 바뀌기 시작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방영 다음날인 14일 월요일에 <프리즌 브레이크>에 이어 방영된 두 번째 에피소드의 시청률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절반에 가까운 6.2%, 점유율 9%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1일 방영된 세 번째 에피소드는 각각 5.3%, 8%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주고 말았다. 그리고 네 번째 에피소드는 8.3%, 8%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5.1%, 8%라는 자체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고 말았다.
이러한 급격한 시청률의 하락은 빠른 전개와 다양한 볼거리보다는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인 인간관계나 심리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춘 전개가 불일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첫 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와의 숨막히는 액션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청자 입장에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보다 보면 지루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10년이라는 시차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려는 시도는 이해되지만, 느슨해지는 스토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더군다나 에피소드마다 그나마 양념 정도로 들어가 있는 액션장면들도 원작영화들은 물론이거니와 파일럿 에피소드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어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에피소드 5까지의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 때문에 할리우드 작가 파업으로 인해 에피소드 8까지만 제작된 것을 방송사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많은 팬들이 원했음에도 <터미네이터>의 신화가 시즌2로 이어지지 못하고 미완의 시즌1에서 끝나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