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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파리에서 찍은 이유? 더 오해해보시라고”
김도훈 2008-02-28

베를린에서 만난 <밤과 낮>의 감독 홍상수

베를린 저녁 5시. 해는 벌써 지기 시작했지만 밤은 아직 멀었다. 한국은 새벽 1시. 모두가 잠든 밤이다. 홍상수 감독의 얼굴에 드러나는 피곤함은 그가 아직 두개의 시간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날 아침 9시 공식시사와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는 홍상수 감독을 베를린 인터콘티넨털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그리고 <밤과 낮>을 물었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을 때 상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나. =경쟁하는 거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호방하다고 해야 하나? 인생은 경쟁이야! (웃음) 이렇게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그런 건 없다. 경쟁부문에 진출하면 좀더 노출이 돼서 다음 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내가 원래 기질이 그렇다. 상 주면 그때 가서 적당한 표현으로 감사하다고 하면 되는 거다. 뭐 똥 누면서 상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 근데 그런 생각도 안 한다. 내가 가치를 두지 않는 것에 왜 마음을 뺏기나.

-제목이 왜 <밤과 낮>인가. 사실 밤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을 먼저 떠올린 다음에 시작한 영화다. 그러니 명쾌하게 영화와 연결되지 않는다더라도 상관은 없다. 뉴욕영화제에 갔을 때 호텔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심심해서 집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집사람은 나하고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일상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시대니까 그걸 별달리 이상하게 느낀 적은 없었는데도 그날따라 참 이상하더라고. 모두들 시간이란 걸 엄청나게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가지 않나. 사실 지구가 둥그니까 통화하는 장소의 시간대가 다른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도 그날따라 유독 느낌이 이상했고, 신작을 구상하다보니까 그 경험이 떠오르는 거다. 그래서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을 연상했고, 거기 따라서 형식과 인물과 결말도 생각나고… 그래서 제목도 <밤과 낮>이 됐다.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붙이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도 같은 경우다. 어떤 영화는 제목이 먼저 떠오르고 어떤 영화는 촬영을 하던 중에 떠오른다. 사실 제목은 영화의 어떤 부분일 따름이고 영화의 전체일 수는 없다. 2시간짜리 영화를 어떻게 하나의 제목으로 설명하겠는가. 제목은 그냥 제목이고 영화는 영화로 보면 된다. 둘 사이의 연결은 나름의 해석을 통해서 맺으면 되는 거다. 제목이 영화의 상투적인 부분을 대표하거나 그런 식이 될 필요는 없다. 제목은 ‘말’이다. 말 자체가 나에게 맞아야 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나에게 제목이 자극을 줄 뿐이다. 제목을 굳이 분석하지 않으려고 한달까. 제목 자체를 분석해서 딱 떨어지게 머리에서 쫙쫙 이해해버리면 솔솔 나는 향이 없어져버린다. 의미는 없다. 말로서의 느낌만 있다. ‘낮과 밤’의 역순이라는 단순한 도치도 좋고 어감도 좋았을 따름이다. 또 영화를 만들면서는 주문처럼 ‘밤과 낮’이라는 제목을 계속 떠올리다보면 그게 구심점이 되면서 영화가 더 모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렇다면 어쨌거나 배경은 외국이 되었어야 했던 건데, 하필 그게 파리인 이유는 뭔가.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지역을 먼저 떠올렸고, 시간대가 한국과 다른 곳으로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파리 등이 있었다. 그런데 뉴욕은 비싸고 토론토는 좀 짧게 머물렀던 편이고, 그러면 샌프란시스코와 파리가 남는다. 샌프란시스코는 근데 내가 더 어렸을 때의 경험들이 나올 것 같더라. 너무 자빠지는 느낌이 든달까. 그런데 파리는…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나랑 파리 사이에 뭔가 있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웃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서 프랑스와 관계있는 사람이 많을 뿐이고 프랑스의 어떤 분들이 내 작품을 인정해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 있을 뿐인데. 그래서 차라리 파리로 해버리자 싶었다. 남들 더 오해해보시라고. (웃음)

-파리에서는 뭘 했나. 1991년에 1년 정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좋아하던 사람들 중에서 유독 프랑스랑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더라. 한국 정착하기 전에 한번 구경하고 싶은 마음,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마침 아는 분 친구인 여자 화가의 파리 집에 꼭대기층 방이 하나 비었다기에 무작정 갔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1년 있게 된 거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산 건 처음이었다. (웃음) 크루아상 먹을 돈도 없어서 바게트만 먹고. 사람들은 내가 파리에서 시네마테크 다녔다고들 하던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린지. 돈이 없어서 그런 데는 잘 못 갔다. 게다가 불어를 못해서 프랑스영화가 아니라 옛날 미국영화만 보러 다녔다. (웃음) 나중에는 집사람이 합류해서 애 보는 일도 하고….

-영화에 나오는 지역도 그때 머물렀던 지역인가. =파리 14구 알레지아라는 동네다. 사실 꼭 거기가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파리에 이틀 동안 영화를 구상하러 갔었는데 그냥 여기서 하면 되겠구나 싶더라고. 살던 당시와 기본적인 골격도 그대로고.

-외국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새로운 어려움들이 닥치던가. =나는 그런 거 잘 모른다. 다만 도움은 많이 받았다. 유학생들도 거의 공짜로 도와줬고. 오르세 박물관도 공짜로 촬영장소로 사용할 수 있었고(오르세 박물관은 대여료가 원래 2천만원이다. 박물관 관장이 홍상수 감독의 팬이어서 무료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편집자).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을 찍으러 오르세에 갔지만 그 그림이 없어서 <세계의 근원>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제일 좋아하는 쿠르베 그림인 <돌깨는 사람>이 도난당해서 없어졌더라. 사실 그것도 참 재미있다.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재미있어하면서 다른 그림은 또 뭐가 있는지 살펴봤고, 막판에 <세계의 근원>으로 결정하게 된 거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주인공들이 하는 대사도 참 좋다. 보통은 내가 대사를 다 써주는데 이번 대사는 두 배우가 촬영 전에 그림을 보며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픽업한 거다.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둘이 그림 앞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잖아. (웃음) 근데 그 대화가 인물들 성격을 잘 반영하는 거 같더라.

-이전에도 배우들이 한 말을 영화에서 종종 활용하곤 하지 않았나. =그건 부분만 따서 썼던 거고, 배우뿐만 아니라 나나 스탭이 한 말 혹은 십년 전 말, 뒤죽박죽 섞여 있는 거였고, 이번처럼 대화 전체가 그대로 들어간 건 처음이다.

-그런데 세잔을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한 적이 있다. 오르세에도 세잔의 작품들이 몇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쿠르베 그림이었나. =부담스러워서. 세잔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다.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잔의 그림을 등장시키면 너무 내 이야기처럼 보일 것 같았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사실 쿠르베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다 재미있다. 하지만 세잔만큼 좋아하진 않기 때문에 딱 그 정도 거리로 좋아하는 사람의 그림을 넣는 게 적당할 것 같더라. <세계의 근원>이라는 그림도 너무 쉬운데, 그 쉬운 것도 재미있고.

-세잔과 쿠르베는 어떤 점에서 거리가 다른 건가. =세잔의 그림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든 예술 작품 속에서는 추상과 구상이 부딪친다. 근데 둘이 부딪쳐서 긴장을 갖는 지점은 모두 다르다. 어떤 작품은 구상이 90%, 추상이 10%에서 멈춘 긴장관계에 있고. 어떤 작품은 그 반대의 긴장관계가 될 수도 있고. 세잔이 멈춘 지점이 내 미(美)감각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추상과 구상이 그림이라는 미디엄에서 멈춘 지점 말이다. 그게 내 미감각의 많은 걸 자극한다. 완벽하다는 느낌을 준다. 너무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닌 딱 적당한 지점에 멈춘 느낌. 봐도봐도 지겹지가 않다. 구상으로만 좋은 그림은 한참 지나봐야 좋아지고 추상으로만 좋은 그림은 너무 관념적이라 많은 경우 지루하다.

-영화적인 형식을 구상하면서도 세잔이라는 사람이 지닌 미적 구성의 완벽함 같은 걸 추구하는 건가. =그는 미적 이상을 구현한 사람 중 한명이다. 나에게는 이상적인 형태지. 그게 딱 좋다. 스물일곱살에 처음으로 그 사람의 <사과> 그림을 실물로 봤다. 보자마자 ‘음, 이거면 됐어’ 싶더라. 어떤 다른 그림도 필요없어. 그 안에 그냥 다 있더라.

-그렇다면 영화에 삽입하는 건 확실히 피해야 했겠다. =그렇지. 영화에서 주무르는 대상은 나와는 거리감이 있어야 하니까. 너무 멀어도 안 되고 가까워도 안 된다. 세잔은 너무 가깝다. 대신 쿠르베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점에서 다른 건가. =그는 관습을 갖고 장난을 친 사람이다. 전복적인 사람이다. 그런 나의 중심 기질은 아니다. 하지만 존경하고 좋아할 순 있는 사람이다.

-<밤과 낮>은 8번째 작품이다. 예전의 영화들이 대구나 반복의 구조를 갖는 데 비하면 이번 영화는 일기체 형식을 갖고 서사적으로 흘러간다. =구상을 시작하면서 일기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옛날부터 일기체로 쓰여진 문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드의 소설도 그렇고. 그런데 왜 일기체가 좋으냐. 하루하루가 약간의 독립성을 가진 것 같다. 줄거리를 이루기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느낌. 그런데 주인공이 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연결되면서 독립성과 연결성이 하나로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게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나온 것 같은가. =모르겠다.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과정을 통과하고 결과물이 나오면 처음에는 남들처럼 객관적으로 못 보는 편이다. 그냥 기다리고 주변 사람들 반응을 듣는다. 그러다보면 마치 남이 만든 물건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시간이 걸린다. 이제 사람들 반응을 듣다보면 내가 대체 뭘 만들었는지 느낌이 오겠지.

-일기체로 끊어서 가니 캐릭터나 상황에 대해 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더 따라줘야 할 것 같은데 단절되고 다른 조각으로 가니까 간결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점프, 냉정, 혼란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테고.

-러닝타임이 꽤 길다. 2시간40분. =과정의 결과물인 거 같다.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을 고민했다. 일기체라 독립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줄이기는 쉬웠을 거다. 근데 손을 안 대게 되더라. 일기체의 맛을 살리려면 심심한 부분과 진한 부분이 비균질적으로 섞여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 밀도가 비슷하게 죽 가면 안 되고 논리적인 패턴으로 가지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편집하면서 확신하게 된 거다. 이 영화도 순서대로 찍으면서 인물을 따라온 영화이고 트리트먼트도 매우 빨리 쓴 편이다. 일주일? 정말로 빨리 썼다. 그러면서 흐름에 대한 나의 판단이 이미 있었던 거다. 논리적이지는 않을지 몰라고 직감적인 판단. 그걸 따라서 매일매일 순서대로 찍은 건데 영화를 다시 정리하면 도저히 안 되겠더라. 다른 영화들은 삼사십분 쉽게 푹푹 자르고 줄였는데 말이다. (웃음) 그래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한 사람의 일기체 형식이라 모든 장면에 성남이 등장한다. 김영호를 이 역할에 캐스팅한 이유는 뭔가. =자기는 어떤 여자랑 사랑에 빠지면 이유가 있어서 사랑에 빠지나? 김영호가 그냥 맞겠다는 생각이 든거지 뭐. 배우를 추천받는데 허문영 PD가 김영호를 추천하더라. 그리고 두번 만났을 때 같이 일하기로 결정했다. 캐스팅 연유를 말로 해봐야 한심하기 짝이 없지. 몇 마디 말을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복잡한 센스가 작용하는 거잖아. 악수할 때 손의 느낌, 인사 때 눈빛, 특이한 말투, 어떤 주제에 대한 이 사람의 반응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만남 속에서 보이잖아. 아주 막연하고 직관적인 거 같다.

-인터뷰 직전에 받은 보도자료에는 “남자의 구원이 처의 거짓말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는 문장이 있더라. 그런데 대체 그게 구원이었나. =완전한 구원은 아니지. 집으로 돌아와서 제자리를 잡는 정도의 구원이라고 할까. 활활 타오르는 로맨스로 인생을 뒤바꿀 게 아니라면 그건 구원이 아니라 ‘구조’ 정도가 아닐까. (보도자료를 쳐다보며) 말은 위험해. 말은.

-그러나 성남이라는 남자가 그렇게 한 인간으로 숙성한다는 느낌도 실은 거의 없다. =영화에서 성장하고 구원받는 거 보는 게 사람한테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영화에는 억지 구원도 너무 많고 구원 자체가 패턴이 되어버리고 있질 않나. 그런 걸 답습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나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도망을 친 남자가 다소 엉뚱하고 좋은 의도의 거짓말을 통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게 좋았다. 그렇게 시작하고 그렇게 끝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후반부에 나오는 성남의 꿈장면은 뭘 의미하는 건가. =자기는 꿈을 이해하나?

-아니…. =그냥 꿈은 꿈이지 꿈.

-그래도 영화에 등장한 꿈이라면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그 상징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게 확실하진 않다. 그 상태로 그냥 남는 거다. 꿈꾼 사람 심리에 대해서 막연히 느낌은 오지 않나? 약간 요상하고. 근데 꿈은 또 사람이 일상적으로 꾸는 거고 확실하게 존재하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딱히 잡혀서 뭘 확실히 말해주는 거면 그건 꿈답지 않은 거다. 나는 그저 성남이란 인물이 꿀 만한 꿈이길 바랐다. 관객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지향점을 그 꿈장면이 갖고 있는 거다. 명쾌하게 설명이 나올 수는 없는 것. 그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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