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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겉멋의 떡밥은 이제 그만!

공감을 얻어내는 데 실패한 P사의 리뉴얼 런칭 티저광고

티저라는 광고 기법이 있다. 제품이나 브랜드에 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미끼만 턱 던져놓아 ‘이게 뭐야?’라며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광고기법이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웅성 그게 뭘까 궁금증이 최고조에 달했다 싶을 때, ‘짜잔’ 하면서 진짜 브랜드가 노출된 본 광고를 내놓는 것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떡밥 전략’이랄까. 영화계에서도 이런 티저 마케팅을 종종 볼 수 있고 최근 <클로버필드>가 그 대표적 사례 되시겠다. 이 티저 기법은 잘 쓰면 사람들 사이에 풍성한 화제가 되어 단번에 브랜드 인지도를 쭈욱 올릴 수 있기에 주로 새로 선보이는 브랜드나 혹은 리뉴얼하는 브랜드 광고 전략으로 많이 쓰인다. 하나 잘못 쓰면 ‘저게 뭐야, 겨우 저거야?’라는 야유를 들을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하는 것도 사실. 티저라고 모두 덥석 무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

최근 국내에서 선보인 티저 CF들은 대부분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나라 광고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마이클럽닷컴의 티저광고 ‘선영아 사랑해’를 그대로 가져다 썼던 최근 청정원의 티저광고도 많은 이들의 콧방귀를 양산했다. 보자마자 ‘선영아 사랑해’의 패러디겠거니 하여 호기심이 반감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실체가 세상에 ‘청정원’이라서 ‘정원아 사랑해’라니 이건 뭐 시청자를 애들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잘생긴 장동건이 나와서 사랑한다는 데 대충 용서해주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 본색을 드러낸 P사의 리뉴얼 런칭 티저광고는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세편의 짧은 티저광고를 선보였더랬다. 런웨이를 멋지게 걷던 모델이 갑자기 멈춰서서 ‘바꿔야 한다’더니, 멀쩡한 스포츠카를 부수고, 고층 사무실에 앉은 비즈니스맨이 의자를 창밖으로 던지며 바꿔야 한다고 한다. 열심히 TV를 보며 응원하던 청년도 갑자기 바꿔야 한다고 하고. 그리고 그 끝에는 정체불명의 오렌지색 로고만 떡하니. 뭔가 폼을 엄청 잡는 것이 시작은 괜찮았다. 물량도 적절하니 많았고 도대체 뭘 바꿔야 한다는 것인지 호기심을 끌 만도 했다. 저 로고가 어떤 브랜드의 로고일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리 기다려도 본 광고는 나오지를 않는 거라. 티저만 몇달을 틀어댄 것인 것. 궁금증은 이제 짜증으로 바뀌고 저 겉멋만 잔뜩 든 모델들이 이제 뭐하는 사람들인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미 티저광고는 실패로 돌아갔다.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때 터뜨려야 하는데 너무 폼을 잡느라 질질 끌어버려 이미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렸을 때, 본 광고가 나왔다. 바꿔야 한다는 건 앉아 있지 말고 움직이라는 의미더군. 아름다움을 직접 땀 흘리는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성공의 기준을 몸의 성공으로 바꾸고 뭐 그런 얘기인 모양인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습니까. 이거 예전에 나이키에서 했던, 조금 더 세련되고 공감가게 했던 얘기 같은데 말입니다요.

티저광고의 핵심은 호기심과 그리고 그 호기심을 무릎을 ‘탁’ 치도록 브랜드의 핵심으로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기술에 있다. P사의 광고는 호기심을 증폭시키지도, 그것을 브랜드와 기발하게 연관시키지도 못했다. 그저 겉멋 들었네라는 생각만 들 뿐. 공감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운동의 겉멋’이 있을 뿐이다. 그리 예쁘면 되었지 그걸 또 박차고 런웨이를 모두 망쳐놓을 건 무엇이며, 비싼 차를 부수어버리는 것은 무슨 행위이며, 고층 사무실을 혼자 떡하니 차지하면 되었지 그걸 또 유리창을 깨고 집어던질 건 무엇인가? 상황이 주는 이질감 외에도 이 ‘겉멋’의 느낌은 브랜드가 가지는 위치에서도 온다. P 브랜드는 스포츠 브랜드에서 분명 후발주자이자 아직 1위를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리 있는 브랜드다. 게다가 새로운 리뉴얼이지 않은가. 한 스포츠 브랜드가 스포츠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그 분야에서 확고한 1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P사는 티저와 본 광고의 그 값비싼 노력을 들여 사람들에게 ‘운동할까’ 하는 생각을 심어줄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운동을 위해 사들이는 브랜드는 아마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P사의 광고에서는 속이 빈 ‘겉멋’만이 느껴진다. 왠지 빈 껍데기 같다. 새로운 런칭이라면 너무 욕심내지 말고 소비자에게 확실하게 브랜드의 새로운 런칭과 로고와 성격을 알리는 데 집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어, 새로워졌네?’ 하면서 조금 더 기특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욕심 부리는 바람에 새로운 콧방귀만 양산하고 마셨군요.

소비자는 날카롭다. 그 브랜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얘기가 적당한지 다 가늠하고 있다.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알맹이를 보여주기도 전에 괜한 겉멋부터 드러내면 곤란하다. 자제의 미덕을 되새길 때다. 제대로 된 티저광고 한번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