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여자라서 더 절절해요

여성의 목소리를 예리하게 담아낸 새 주말연속극 KBS2 <엄마가 뿔났다>와 MBC <천하일색 박정금>

<천하일색 박정금>

연기파 선수들이 ‘헛둘헛둘’ 뛰는 주말연속극의 새로운 만찬이 몇 숟가락 뜨지도 않았는데 제법 배부르다. 오래 입은 속옷 고무줄 같은 진도에 등장인물도 버글버글한 연속극의 마라톤 레이스는 ‘닥본사’의 충성심을 계속 발동하지 않아도 괜찮은, 후덕한 군살을 자랑한다는 게 특징. 그런데 지난 2월2일 나란히 출발한 KBS2 <엄마가 뿔났다>와 MBC <천하일색 박정금>은 시작부터 자장면과 짬뽕처럼 선택의 갈등을 자아내더니 본방과 재방으로 두루두루 맛보고 싶은 매력마저 드러내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표 가족드라마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데 한줌의 주저도 보이지 않는다. 목욕탕집에서 세탁소집으로 업종 변경한 대가족이 하루 쌀소비량이 궁금할 만큼 아침부터 꼬박꼬박 따뜻한 밥과 국을 챙겨먹으며 크고 작은 갈등과 권태가 산재한 일상을 복각해내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똑똑이 어법 페르소나 가운데 한명인 배종옥이 얄궂게도 ‘박정금’으로 출동한 <천하일색 박정금> 역시 아줌마 여형사의 각 잡지 않은 활극 등 짬짬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면서도 가족의 이름으로 얽힌 징글징글한 인간사를 다루는 주말극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점잖게 방관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성들에 비해 김혜자, 배종옥 등 여성들이 분노, 한숨, 독기, 연민, 파이팅 등으로 부지런하게 인생의 고락을 타고 있는 대목은 흥미롭다. 또 그들은 그 진부한 감정의 군더더기로 가슴을 때리고 있다. 제 이름보다 ‘엄마’나 ‘에미야’라는 호칭이 익숙한 60대부터 엄마이면서 여성인 30대까지 여물디 여문 완숙한 암컷들은 인생이 그냥 머물거나 대충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못하고 있다. 웬만한 경제력의 배필과 결혼해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희망마저 차례차례 배반하는 자식들 때문에 기막히고 황당한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혜자는 ‘누군들 제 인생이 맘에 들까’와 같은 긍정과 포기의 넋두리, 걸레 휙 집어던지기와 같은 ‘뿔내기’로 텔레비전 앞 엄마들의 육성을 예리하게 떠내고 있다.

<천하일색 박정금>에는 조금 더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후련한 공명을 낸다.

첫아들은 실종됐고, 범인 검거 실적도 좋지 않은 이혼한 여형사 배종옥은 신파의 눈물에 익사할 상황에서도 꼿꼿하고 씩씩하게 건강한 생활력을 파닥거린다. 비운의 조강지처이자 박정금의 모친인 나문희는 걸핏하면 동거인 박준규와 툭탁거리며 도도한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조강지처의 안방을 차지한 ‘청주댁’ 이혜숙의 등등한 독기, 늘 화가 난 얼굴로 휘청거리는 ‘사공유라’ 한고은의 막돼먹은 방어벽 등도 행복한 생존의 욕구가 번득여 미움과 연민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

인생의 후반부를 관통 중인 이들은 답답한 인내나 대책없는 폭발만으로 아물 수 없는 과거의 상처와 예기치 않는 현재의 지뢰를 마주보지 않는다. 중얼거리거나 이글거리는 등 목소리의 볼륨은 다르지만 저마다 부릅뜨고 부딪친 뒤 포기하는 정면돌파로 자잘한 인생의 파도를 넘고 있다. <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은 주름살과 비례해 절절해지는 엄마의, 여자의 뜨거운 가슴을 경쟁적으로 내밀고 있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