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열전 두 번째 작품.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처음으로 첫 연극 연출에 도전했다. <비언소> <통일 익스프레스> <거기> 등을 쓴 이상우가 원작자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권력을 조롱하는 입담은 일품이나 시대의 변화에 맞게 원작의 대사를 대거 수정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이 대선 공략으로 내세운 경부운하건설 계획을 은근슬쩍 비꼬거나 신정아, 홍라희 등 한때 한국 미술계를 주름잡았던, 하지만 예술품을 한낱 사리사욕의 도구로 전락시킨 여성들의 이름을 겁없이 언급할 때는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말장난을 활용한 유머를 다채롭게 곁들인 것도 김지훈 연출의 특징. 사회상을 넓고 깊게 조망하는 원작의 시선이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관객이 배꼽을 움켜쥐게 하는 덴 멋지게 성공한다.
“내가 대통령을 여덟분 다 모신 도둑놈이야. 이승만 때는 미군부대 전문적으로 털어먹고, 박정희 때는 금고 전문가로 데뷔해가지고, 전국 수사기관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늘근 도둑과 더 늘근 도둑. 초파일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두 도둑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분’의 저택으로 잠입한다. 오랜 수감생활로 바깥 물정에 까막눈이 된 그들은 그분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자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피해 간신히 집 안으로 들어와 금고를 찾은 그들. 벽에 즐비하게 걸린 고가의 미술품 컬렉션을 보고도 농짓거리나 주고받더니, 개들조차 잠든다는 새벽을 기다리다 담배를 안주 삼아 소주까지 꺼내 마신다. 달아오르는 술기운에 알딸딸해진 둘은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투닥거리다가 마침내 경비견에게 들켜 경찰서로 잡혀가고 만다. <늘근도둑이야기>를 가득 채운 에너지의 대부분은, 훌륭한 원작 텍스트와 배우들의 열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훈 감독의 전작인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박철민, 박원상은 애드리브임이 분명한 대사조차 능글능글하게 맞받아치고, 1인3역으로 출연한 최덕문 역시 소시민적이거나 섹시하거나 악랄한 카리스마를 거침없이 뽐낸다.
과도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두 도둑의 사상적 배경을 캐내려고 애쓰는 수사관에게서, 냉정해야 할 때 물렁하고 가끔 허공에다 헛발질도 하는 요즘 검찰의 행태를 떠올렸다면 과한 상상일까. 시대는 바뀌어도 훌륭한 텍스트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니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은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경호, 유형관이 늘근 도둑과 더 늘근 도둑으로 더블캐스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