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상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눈물 젖은 증언 뒤로 일본 퇴역군인 할아버지들의 참회가 잇따른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비하인드 포가튼 아이즈>는 관객의 심장에 깊숙이 호소하는 다큐멘터리다. 김윤진이 무보수로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감독 앤서니 길모어의 손에서 탄생했다. 영어 선생님에서 연출자로 변신, ‘네임리스 필름’이라는 영화공동체를 조직해 활동 중인 그를 만났다.
-위안부 문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친구의 추천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다 한국에 매력을 느꼈고,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 들어갔다. 첫 학기에 한국 현대사 수업을 듣다가 처음으로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됐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강렬하게 사로잡혀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다큐를 찍겠노라 결심했다.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는 말인가. =전혀. 미국 대학에서 2차대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대부분 나치에 관한 문제들이다.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했다. 때문에 위안부 이야기를 듣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작품의 중심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터뷰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컸을 텐데. =대학원 친구인 이동주씨가 실질적으로 모든 인터뷰를 담당했다. 그녀와 함께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관계를 맺는 데 주력했다. 잠깐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방송국 사람들처럼 일하고 싶지 않았다.
-일본 퇴역군인들의 인터뷰도 포함됐다. 이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대학원에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마유씨가 그분들을 찾아냈다. 많은 일본 퇴역군인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기꺼이 발언하려고 한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 양쪽 모두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 다큐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전쟁이 모든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다 합쳐서 3년이 걸렸다. 자료를 조사하고 계획을 짜는 데 1년을 보냈고, 제작에 1년이 걸렸다. 그리고 200시간 분량의 영상을 편집하는 데 또다시 1년이 걸렸다. 모든 스탭이 무보수로 일했고 지인들이 후원금을 보태주었으며, 나의 비자와 마스터 카드가 든든한 스폰서가 돼줬다. (웃음)
-김윤진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녀와의 작업은 어땠나.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김윤진씨는 너무나 상냥하고, 아름답고, 친절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는 사실상 돈을 한푼도 받지 않고 참여해줬다.
-미국에서 지난해 5월에 개봉했는데, 한국에서의 상영 계획은 잡혔나. =현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아보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독립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극장 개봉은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나의 꿈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다. 지금 기도하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