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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잡지기자 예찬론
김경우 2008-02-15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 멀쩡한 좋은 직업 놔두고 왜 잡지기자가 되려고 하는지 몰라.” 아는 여동생이 대학 졸업반인데 잡지기자가 되겠다고 바락바락 고집을 피운다는 거다. 밥 먹듯이 야근을 하고, 성질도 나빠지고, 박봉인 잡지기자를 하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자기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거라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글쎄… 나라면 그 친구에게 도시락을 싸주며 반드시 잡지기자가 되라고 뒷바라지를 해줄 것 같다.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잡지기자가 ‘3D 중 3D 업종’이긴 하다. 일단 쉽게 일하기도 오래 일하기도 어렵지(Difficult), 더러운 꼴은 더럽게 많이 당하지(Dirty), 게다가 술 먹을 일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Drink), 상대적으로 이슈화가 안 돼서 그렇지 명실상부한 3D업종인 게다. 그런데도 왜 잡지기자가 되는 걸 독려하고 싶냐고? 초장부터 안 좋은 점만 이야기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또 그런 단점들을 상쇄시키고 남을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잡지계 대선배들에 비하면 털끝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체득한 것이긴 하지만 나름 신빙성있는 장점들이라 생각한다. 그럼 조목조목 그 장점들을 한번 읊어볼까나?

첫째, 따로 돈 들여서 자기 계발에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다. 매주든, 격주든, 한달이든 때 되면 찾아오는 마감은 혹독하게 자기 수련을 시켜준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한 꾸준하게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다는 점. 이거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거다. 아무리 자기 전문 분야래도 기사 하나 제대로 쓰려면 찾아봐야 하는 자료가 부지기수다. 또 만나야 하는 취재원은 얼마나 많은데. 어쩌다 해외에 손 벌릴 일이 있을 때면 자동으로 영어공부도 하게 된다. 학원에 생돈 퍼주며 잘 되지도 않는 자기 계발에 애쓰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어찌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둘째, 이보다 더 ‘프리’한 직업은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영혼이 자유로운 이들한텐 더더욱! 사실 태생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샐러리맨과는 안 어울리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정작 자신은 철석같이 공무원 체질이라 믿고 있지만 40도 되기 전에 ‘팽’당할 사람도 무지 많을 거라. 잡지기자는 특별한 정신질환이 없는 한 고유의 개성이 보장되며 자기 스스로 박차고 나오면 나왔지, 남의 손에 ‘팽’당할 확률은 극히 적은 직종이다. 셋째, 독자로서 보던 잡지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잡지기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코흘리개 때 봤던 만화잡지건, 학창 시절에 봤던 교양잡지건,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봤던 연예잡지건 그런 잡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은 정말 짜릿한 거다. 개인적으로는 8년 동안 정기구독을 하던 <씨네21>을 직접 만들 기회를 얻었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밖에도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은 장점이 수두룩하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접겠다.

그나저나 왜 침 튀겨가며 잡지기자 예찬론을 펼치냐고? 그야 <씨네21> 독자들과 편집부 선배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지. 경력이라곤 하지만 막 들어온 천둥벌거숭이가 못 미덥더라도 이런 맘이 있으니 어여삐 봐주십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