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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기자들의 설 연휴 강력 추천 아이템 모음 [1]
씨네21 취재팀 2008-02-04

문석: 플레이스테이션3 + <다이하드> 박스세트

완벽한 화질과 음질에 대한 바람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90년대 초반 시네마테크(라기보다 비디오테크)에서 화질 음질 최악의 VHS 테이프로 본 영화들이 더 큰 감동으로 남아 있는 건 단지 그것들이 걸작이어서는 아닌 것 같다. 흐물거리는 나쁜 화질일지언정,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면서 절박하게 영화를 봤던 탓에 기억 속 영상이 그리 또렷한지도 모른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VHS에서 DVD로 옮겨타면서 그만한 감동은 사라졌지만, 확실한 건 더욱 깨끗한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보니 좋긴 좋다는 사실이다. 블루레이나 HD DVD의 출시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문제는 전용 플레이어의 가격이 아주 비싸다는 것. 전용 플레이어의 절반 정도 가격인 플레이스테이션3(PS3)는 이런 고민의 해결책이었다. 위닝일레븐 같은 게임을 HD 화질로 플레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PS3는 블루레이 DVD를 볼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인 셈이다. 아직 타이틀이 많이 출시되진 않았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다이하드> 박스세트를 꼽겠다. 수입 DVD라 스페셜 피처에 한글 지원이 안 되지만, 맥클레인 형사의 활약상을 또렷한 영상으로 한달음에 재현할 수 있다는 건 값비싼 행운이다.

주성철: <007 얼티밋 콜렉션 박스세트>

휴가를 보내며 ‘뭔가 했다’는 느낌을 주는 데 미드 박스세트만큼 깔끔한 선택은 없다. 하지만 지난해 출시된 <007 얼티밋 콜렉션 박스 세트>도 그만한 만족감을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출시 시점상 <007> 시리즈의 최근작이자 새로운 걸작인 <007 카지노 로얄>이 빠진 것이 아쉽지만, 시리즈 역사의 시작인 <007 살인번호>부터 <007 어나더데이>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숀 코너리부터 피어스 브로스넌에 이르기까지 <007> 역사의 완벽한 총정리다.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 뛰어난 영상과 사운드는 두말할 것 없고, 무엇보다 화려한 서플먼트가 볼거리다. 각 편에 2개(본편 디스크와 서플먼트 디스크)씩 40개의 디스크로 이뤄졌는데, 제작 다큐멘터리와 각종 무기류를 총망라한다. 그 사이에서도 원작자 이언 플레밍과 추리소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담 같은 영상은 보석처럼 빛난다. 순서대로 1편부터 차례로 본편과 서플먼트들을 독파해나가길 권하고 싶은데, <007> 시리즈의 역사 자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대 블록버스터의 역사와 그대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컬렉션 ‘거꾸로 읽는 세계영화사’쯤 될 것이다.

박혜명: 밥 딜런 디럭스 박스 세트

자타공인 ‘마니아’라면 과한 수집벽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 붉은색 천에 감싸인 단단한 박스 세트(문자 그대로 박스임)의 밥 딜런 베스트 컬렉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수히 발매돼온 베스트 음반들을 다 젖히고 이 3CD 디럭스 박스 세트를 강추하는 까닭은 포장과 내용물 양면에서 튼실한 승부를 보기 때문. 먼저 딜런의 음악과 삶을 요약해 실은 40p 부클릿. 팬들도 접해보지 못한 희귀한 사진들이 생각보다 빽빽하다. 1979년 샌프란시스코 콘서트 포스터라든지 에릭 클랩턴이 게스트 무대를 서주기도 했던 1978년 영국 런던 블랙부시 콘서트 포스터, 같은 해 조앤 바에즈와 함께 공연했던 콘서트의 포스터, 1965년 뉴포트 포크페스티벌 무대 사진 등등(!) 팬이라면 눈이 뒤집히고도 남을 비주얼 자료들은 별도로 10장의 카드에 묶여 들어 있다. 각각의 카드 뒤엔 해당 이미지에 대한 해설도 적혀 있어 더없이 친절한 핵심 요약 가이드. 3CD 수록곡은 51곡. 웬만큼 중요한 곡들은 다 있다고 보면 되고, 정말 중요한 건 옛날 레코드판처럼 디자인된 예쁜 외모의 CD 그 자체다. 물욕의 끝을 보게 하는 이 박스 세트의 핵심은 박스 내부에 있다. 우아한 벨벳 스타일의 검은 내부포장과 금박의 컬럼비아 로고. 물건들을 꺼내기 쉽게 달아놓은 검정 리본. 럭셔리 <Dylan> 디럭스 박스 세트는 지금 아마존에서 44달러를 주면 살 수 있다. 참고로, 전세계 리미티드 에디션. 주문을 서두르면 설 연휴 끝나기 전에는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

손홍주: 니콘 디지털 카메라 D3

사진기자가 아니랄까봐 또 카메라를 가지고 이야기하나 싶지만 이번 설은 다른 때와는 조금 다른 설이 될 것 같다. 설을 앞두고 회사에서 사용해왔던 내 생명과도 같은 카메라 장비를 전면적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아닌 다른 물건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나의 모습이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즐거움이라 믿고 싶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종과 전혀 다른 회사의 장비를 새롭게 받는다는 설렘과 기대감은 학교 입학을 위해 학용품을 새것으로 받을 때의 어린 나의 기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직업이 카메라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니 다른 놀이도 많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능숙함이 절실히 요구되기에 카메라 놀이를 하려고 한다. 인물사진은 가족의 촬영이 최우선이라는 앞선 말이 현실이 되는 설 풍경을 기대한다. 새로운 장비의 시험대로 가족을 선택한 것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지만 부모님의 장식장 위에 영원히 피터팬처럼 머무는 아이들을 평범한 인간의 사진으로 바꿔주고 싶고, 또 그곳에 피터팬의 웃음을 지닌 부모님의 사진도 함께 새롭게 꾸며드리고 싶다. 물론 나이와 함께 주름을 핑계 삼아 자꾸 카메라를 피하시는 부모님이 문제지만 말이다.

최하나: <뉴요커> 픽션 팟캐스트

어린 시절 침대맡에서 듣는 이야기에 가슴 뛴 적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잘 알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읽는 것과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음성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빡빡한 활자보다 세뼘 정도는 더욱 신비로우며 제대로 몽상을 부추기는 법이다. 나이가 들며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이야기 듣기’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것이 <뉴요커>의 픽션 팟캐스트(Podcast: 아이팟용 방송 서비스. iTunes를 통해 청취할 수 있다)였다. 그때그때 게스트로 출연한 작가가 <뉴요커> 아카이브 중 ‘내 인생의 단편소설’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하나 선택해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히 낭독해주는데, 이들이 흠모를 표하는 대상은 아이작 바벨, 도널드 바셀미, 보르헤스, 존 치버 등을 아우르며, 99%가 고가의 해외 배송료를 감내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접할 수 없는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게스트의 목소리, 낭독력, 연기력(!)에 따라 재미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방송을 진행하는 <뉴요커>의 에디터 데보라 트리스먼의 목소리는 여자인 내가 듣기에도 묘하게 섹시한 중독성이 있음을 고백한다. 일단 존 치버의 <Reunion>부터 한번 들어보시라. 장담컨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책없이 낄낄대고 있을 테니.

김도훈: 에반게리온 초호기 프라모델

12년 만의 귀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 에바 팬들(그리고 건프라족)에게 권할 만한 설 보내기 방법. 당연히 <에반게리온: 서(序)>의 개봉과 동시에 반다이(Bandai)에서 출시한 ‘에반게리온 초호기 신극장판 Ver’ 프라모델 만들기 아니겠나. 이미 10여 년 전 출시된 모델을 만들어본 팬들도 있겠지만 이번 모델이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 반다이의 열혈 장인정신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델이다. 팔은 플라스틱 관절부를 부드러운 플라스틱 수지가 감싸고 있고 언비리컬 케이블과 AT 필드, 프로그레시브 나이프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사실 프라모델이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취미는 아니다. 접착제나 채색 도구도 필요없다. 진정으로 필요한 건 고도의 집념. 설계도를 보고 열심히 파트를 맞춰나가다 보면 어느새 포효하는 초호기가 눈앞에 태어난다. 설을 오덕의 혼으로 불태워보시라.

장미: 모카포트

혀를 녹일 만큼 달달한 자판기 커피도 좋지만 연휴를 맞아 느긋하게 에스프레소를 즐겨보는 건 어떨지. 미각이 예민하거나 손재주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간단하게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는 방법! 바로 모카포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모카포트는 포트톱, 바스켓, 베이스로 구성된다(외우기 힘들면 그냥 머리, 몸통, 다리라고 생각하시라). 먼저 베이스에 물을 붓고 바스켓에 커피 가루를 다져 넣은 다음 포트톱을 끼워 불 위에 올리면, 베이스의 물이 달아올라 수증기로 변하면서 바스켓의 커피를 에스프레소로 뽑아 올린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비해 지극히 소탈한 도구지만 포트톱을 열어 향긋하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확인하는 순간, 그 볼품없는 작은 주전자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재주꾼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가정에서 흔히 사용한다는 모카포트는 비알레티 모카포트. 둔탁한 외양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가격도 내구성도 무척 훌륭하지만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알루미늄이 산화한다는 단점이 있다. 스테인리스 모카포트는 일사, 지안니니 등에서 생산하는데 반짝거리는 외관은 단연 매력적이나 훨씬 비싸다. 안캅에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 모카포트도 판매한다. 지금부터라도 커피와 친해지고 싶은 이라면, 당장 백화점 커피 코너나 남대문 수입 상가로 뛰어가도록(인터넷 숍을 이용해도 좋다. 비알레티 모카 2컵을 3만원 이내에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