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NL이지?” 그렇게 묻는 선배들이 있었다. 반은 농담으로 넘겨짚는 거지만, 뼈가 담겼다. 혀를 끌끌 차면 또 묻는다. “그럼 PD였나?” 나는 프로듀서가 아니다. 그런 고로 NL에 더 가까운 셈인가? 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민족훼방’이라면 모를까, 일하고 놀기에도 바쁜데 그런 독립운동 구호에 몰입하며 산다는 건 난센스! People Democracy, 민중민주? 역시 닭살 돋는 거대담론! 이 암호 같은 영어약자들이 뭐기에, 아직도 사람의 성향을 분류하는 수단이 될까.
나름 유효한 측면도 없지 않다. NL이냐 PD냐 하는 잣대는 촌스럽고 유아적이지만, 한때 학생운동 물을 세게 먹었던 이들은 40대가 넘어서도 그 자장에서 100% 자유롭지 않다. 20대 초·중반에 한번 의식화되어 굳어버린 관점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 탓이다. 인간관계로도 얽힌다. 학생운동판에서 동일한 조직과 노선을 공유했던 이들 끼리끼리 늙어서도 모임을 갖고 만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나와서도 NL이니 PD니 하며 싸우는 이들은 철이 없을까? 아니다. 당의 존폐와 운명을 건 냉엄한 투쟁이라고 한다. 민주노동당 이야기다. NL이 문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주파의 ‘종북주의’가 공격을 당한다. PD에 가까운 평등파는 ‘종북주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 떠나야 당이 산다고 주장한다. ‘종북주의’ 성향이라…. 말뜻으로만 풀어보면 북의 지도노선 추종을 의미하는데, 조어 자체에 ‘수구’와 비슷한 비난이 내포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성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잘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PD, NL 또는 종북주의는 모두 정치적 성향을 일컫는다. 성향이란 결국 특정인과의 거리두기다. 여기서는 김정일과 북한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가 기준점이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분류법도 있다. 케케묵은 ‘진보냐, 보수냐’의 도식. 1980년대의 대학 캠퍼스에서 교수들은 그 한 가지 잣대만으로 비평의 도마에 오르는 신세가 되곤 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종교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 성향이 뭐야? 진보야, 보수야?” 그러한 이분법은 모호하다. 사람의 능력을 숨긴다. 인간성도 숨긴다. 어느 편인가만을 두루뭉술하게 구별짓는다.
이명박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 파견됐던 문화관광부 전문위원이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 파악을 요구했다가 ‘언론통제 의혹’을 샀다. 인수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유감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에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뭐! 방식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중에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냈을 것이다. 인수위가 궁금했던 것은 언론사 간부들의 소비성향이나 투자성향, 성적 취향이 아니었을 테고, 정치적 성향이었으리라. 그들이 이명박과 새 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인물인지….
정치적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 특질을 지녔다. 크게 바뀌면 전향이 되고, 작게 바뀌면 철새가 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변절이거나 변심이다. 이제는 그러한 성향을 포장하는 말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진보니, 보수니, NL이니, PD니, 종북주의니 더 나아가 친노니 친이명박이니 하는 언어들은 인간의 성향을 규정하는 기준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인성 종합평가’ 같은 ‘성향 종합평가’가 생긴다면 그런 분류법은 신뢰성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급진적인데 집에서는 부인을 두들겨 패는 남성을 진보성향이라 규정하기는 힘들다. 구시대 가치에 집착하는 인물이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행실이 존경스러운 이들도 있다. 차라리 부문별 성향을 세분화하거나 고질 vs 중질 vs 저질, 또는 상식 vs 몰상식 따위의 형식으로 더 단순화하는 편이 낫겠다. 이런 기준이 일상에서의 합리성까지 따지는 데는 더 유용해 보인다.
물론 남의 성향을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움직일 수 없는 나의 성향이 존재하는 양 떠드는 일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내 자식들의 성향은 내가 멋대로 재단할 자신이 있다. 싹수를 미리 점검하는 차원에서 성향파악을 해본다. 그들은 ‘호모’다. 호모(好母), 즉 친모(親母)다. 식당에만 가면 모친 옆자리 앉기 쟁탈전에 돌입하면서 부친을 무시하는 놈들이 누구 편인지는 뻔하다. ‘호모’들이 반격한다. “아빠는 반가족 성향이야. 걸핏하면 늦잖아. 놀아주지도 않잖아.” 나는 아이들 눈치를 보며 개인 성향관리에나 돌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