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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사운드, 시규어 로스의 DVD 와 새 앨범

지난해 말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열린 ‘음악, 영화를 연주하다’ 테마 상영을 통해 아이슬란드 그룹 시규어 로스의 <Heima>를 스크린으로 마주한 감흥은 다행히도 혹은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좋았다. 원래 DVD로 갓 출시된 것이었고 예정대로 그냥 출시만 해버렸어도 그걸로 족했을 테지만, 그 내용을 누구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들을 스크린 위로 유령처럼 불러내 그 잔상 아래서 허덕이고 싶다는 마조히즘적 망상을 해볼 정도로 스케일은 거대하고 디테일은 섬세한 필름이었기에 그 같은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규어 로스에게 아이슬란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서구의 록이나 팝 지형도에서조차 궁벽하기 이를 데 없는 제3세계 취급이란 뜻에 다름 아니어도, 설마 그것이 그대로 이처럼 초강점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실은 이들의 음악이 온전히 그 환경의 산물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그동안 너무 의외로 다가왔던 데 대한 일종의 뒤늦은 각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그룹의 음악을 알든 모르든 차별없이 어머니 대지처럼 그 품 안에 거두어들이는 <Heima>는 지난해에 시도된 시청각/공감각 경험 중 분명 기대하지 않은 장외 홈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규어 로스가 월드 투어를 마치고 고향인 아이슬란드로 돌아가 2006년의 짧은 북극지대의 여름 동안 무료로 벌였던 일련의 공연을 필름에 담은 줄거리가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Heima>는 음악영화이자 록 필름이고 또한 사람과 자연과 음악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화두이다.

그리고 <Hvarf-Heim>은 그에 동반된 보너스 음원이다. 영화와의 연계성은 유지하면서도 그와는 독립적인 셀렉션을 담은 신보로 세미 커플링된 형태로 출반되어, 기존 미발표곡들 외에 영화에서도 쓰인 이들의 어쿠스틱 재해석 버전이 거의 그대로 수렴되었으므로 <Heima>와 <Hvarf-Heim>은 이란성 쌍둥이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타이틀들, 즉 ‘heima’가 아이슬란드어로 ‘집으로’의 뜻이라면 ‘hvarf-heim’은 ‘피난처-집’의 의미라고 한다. 마약에 절어 있다가 기사회생하여 참회의 음반을 만들거나 혹은 알 수 없는 나락에 끝없이 빠져들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다가 어느 날 돌연 가슴을 때리는 간증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비척이며 찾아오는 퇴물들을 우리는 작은 기적인 양 문 열고 맞아들이곤 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탕아의 회귀본능을 믿는 것은 록계에서는 종종 하나의 신앙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규어 로스가 이번 영화와 음반을 통해 자신들의 귀향을 기록한 방식은 말 그대로의 귀가, 의도하지 않은 금의환향이 되었다.

이들의 노래는 아이슬란드어가 아닌 의미없는 혹은 의미를 초월하는 자신들만의 언어, 이른바 ‘희망어’(hopelandic)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선율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 어린애 같은 옹알이 뒤에 숨은 메시지를 힘들여 강구하는 것은 맥빠지는 일일뿐더러 전혀 무의미한 짓이다. 언어는 인간의 것, 자연은 말없이 그들의 음악을 들려줄 뿐. 빙산이 갈라지며 내는 고요한 굉음, 화산지대의 마른 검은 흙 위를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고원 지대에 내려앉는 거센 바람 소리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위로 시규어 로스의 <Hoppipolla>가 흐르고, 듣는 우리도 더이상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