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2008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21번째 기증품은 고 안철영 감독의 아들 안형주씨가 기증한 다큐멘터리 <무궁화 동산>(1948)의 필름입니다.
단발로 자른 파마 머리에 분홍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과 그 뒤 나란히 한복에 갓까지 갖춰 쓰고 선 청년들. 마치 할머니의 젊은 시절 빛바랜 컬러 사진을 보듯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고, 중년 남성 뒤로 한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이 이국적인 느낌마저 전해주는 이 풍경들은 바로 1948년 하와이 이주민들의 생활을 담은 안철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무궁화 동산>의 장면들이다. 16mm 컬러 필름으로 해방 뒤 하와이 이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기록한 이 작품은 외국에서 일부 미국인 스탭들의 참여로 제작되었지만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이기도 하다. 해방 뒤 미군정청 예술과장과 과도정부의 문교부 예술과장을 지내기도 했던 안철영 감독이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일제의 수탈이 한창이던 1939년, 당시 친일 일색이었던 제작 환경 속에서 어촌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어화>로 데뷔한 그는 최남주, 이극로 등과 함께 해방기 한국영화 제작을 주도한 조선영화사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무궁화 동산>은 1947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목회 활동 중이던 부친 안창호 목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그곳 한인 이주민들의 모습을 기록하게 된 것. 몸은 비록 낯선 이국으로 떠나왔지만 두고온 고향의 흔적과 그리움만은 간직하려 했던 당시 하와이 이주민들의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이 작품의 16mm 원본 필름은 안철영 감독의 아들인 안형주씨가 기증했다. UCLA 재미아시안연구센터의 한국연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이기도 한 그는 역사 속에서 잊혀져간 이들의 흔적과 격동의 시간을 헤쳐온 한 영화감독의 삶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