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1시간 동안 자기들끼리 떠들고 웃다 끝난다고 간혹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희는 정말 목숨 걸고 웃기려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새해 들어 여기저기서 펀치를 얻어맞은 <무한도전>을 보면서 나긋한 화법 속에 올곧은 뼈와 뾰족한 가시를 담은 김 PD의 말에 좀더 공감과 응원을 얹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구더기 운운한 표현이 과잉의 자신감을 나타낸 것 같아 거슬리기도 했는데 <무한도전>은 당분간 정말 구더기를 피해 앞만 보고 달릴 필요가 있겠다는 수긍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소의 뿔을 세우고 경주마들의 안대도 착용한 채 말이다.
단일프로그램 사상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은 기사를 배출한 프로그램일지 모르는 <무한도전>은 2008년 달력을 펼치자마자 오히려 더 가열차게 갖은 화두에 휘말렸다. 철지난 표절 시비에도 올랐고, 첫 방송부터 ‘재미없다’는 비판도 샀다. <무한도전>의 검색어 결과가 늘어난 배경에는 프로그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출연진과 관계있는 연말의 한 사건도 배경이 됐다. 유재석 등 멤버들을 MC로 기용한 <MBC 가요대제전>이 도입부에서 일본 유명그룹의 콘서트 오프닝을 복제해 완소 국민 캐릭터들을 졸지에 아류의 흉내쟁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여파는 <무한도전>의 예전 어떤 아이템 가운데도 일본의 어느 예능프로그램과 유사한 게 있었다는 의혹으로 번져 프로그램의 오리지널리티가 의심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멤버들이 동해가스전에 상륙하는 과정을 다룬 새해 첫 방송도 매질을 당했다. 헬기 탈래, 배 탈래를 두고 티격태격하고, 모두가 마다한 선택 사양인 ‘헬기’파들이 오히려 덜 고생했더라는 반전의 리얼드라마를 그려낸 게 새삼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다 끝난’ 프로그램으로 도마에 올랐다.
결점이든 장점이든 지속적으로 도마에 올라 공론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인기의 이면이고 숙명일 수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스타덤은 시청자들의 희로애락을 관통한 오합지졸 캐릭터들이 시간을 두고 숙성 기간을 거쳐 구축한 것이다. 어색했던 그들이 콧바람 하나로 다음의 ‘합’을 간파할 만큼 친해지고, 심술보나 무능함만 도드라졌던 이들의 사랑스러운 이면까지 속속 파악해 공유한 데에는 기막히게 모인 멤버, 제작진, 시청자의 오랜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빚어낸 결과다. 시청자는 기꺼이 즐거운 친구가 돼준 그들에게 오래오래 우정을 유지하면서 덜 외롭고 싶은 기본 감성을 발동해온 것이다. 진짜 남의 것을 베껴 자존심을 팔았다면 경을 칠 일이고, 인기 좀 많아졌다고 건방을 떤다면 절교 선언도 서슴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땀 냄새를 풍기며 ‘로케이션 플레이’를 즐기는 그들의 자세와 진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폐지와 신설이 벼락같은 우리 예능프로그램가에 10년이 지겹지 않은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최적의 자격을 지닌 <무한도전>에게 어설픈 회초리로 이상한 우월감을 맛보려는 새해의 풍경은 좀 정 떨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