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도 아름답지만 탭탭탭, 끊임없이 바닥에 내디뎌도 끄떡없는 튼튼한 하이힐만 있다면 독무도 아찔하게 멋지다. “저 움직이는 다리들”이라는 극중 표현처럼 뮤지컬 <42번가>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은 한치의 오차없이 스텝을 밟아가는 여배우의 두 다리다. 1933년 미국 브로드웨이. 시골 출신의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첫 공연에서 우연히 여주인공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뮤지컬 <42번가>의 심장에는 단연 탭댄스의 피가 흐른다. “무대에 나갈 때는 햇병아리지만 돌아올 때는 이미 스타일 것”이라는 연출자 줄리앙 마쉬의 단언대로 철부지라서 더욱 경쾌한 스텝을 자랑하는 페기 소여는 하루 만에 완벽한 스타로 거듭난다.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축 처진 기운을 단숨에 북돋우는 탭댄스의 매력은 에피소드별로 끊어지는 전체 공연의 리듬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우아하게 틀어올린 금발머리. 반짝이는 은색 드레스. 탭댄스를 추는 발끝으로 명랑하게 긍정의 기운을 전달하는 캐릭터들. 뮤지컬 <42번가>를 채우고 있는 30년대 미국의 공기는, 단정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풍기는 그 시대의 의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대공황이 미대륙을 휩쓸면서 절망의 시간이 도래했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 사람들은 여전히 보드라움을 간직하고 있다. 길에서 주운 동전 하나로 백만장자가 되길 꿈꾸는 여자들이나 여자와 돈을 동시에 거느리는 것이 인생의 쾌락임을 노래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천박하기보다 무모할 정도로 천진해 보인다. 브래드포드 로프스가 쓴 원작 소설이 줄리앙 마쉬의 재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뮤지컬에서 좀더 강조되는 것은 페기 소여라는 신데렐라의 성공담. 1984년 당시 코러스걸이었던 캐서린 제타 존스가 페기 소여 역의 여배우가 도중 하차하는 바람에 딱 하룻동안 그 역할을 연습해 여주인공 역을 거머쥐었다는, 극의 내용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아 더욱 믿기 힘든 후일담도 흥미롭다.
1980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래 1981년 토니상 최고 뮤지컬상, 2001년 토니상 최고 리바이벌 뮤지컬상 등을 수상하며 미국 전역에서 6천회 넘게 공연된 작품. 이번에는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브로드웨이 특유의 현란함을 직접 보여준다. 다소 입체적이지 않은 무대가 처음에는 단조로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형 거울이나 전구가 촘촘히 박힌 계단을 이용한 일부 하이라이트 장면은 숨 막힐 정도로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