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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문제는 편견이다
문석 2008-01-18

난생처음 정신병원이란 데를 가본 건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고 그 때문에 49일, 그러니까 딱 7주 동안 한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다행이었던 건 증상이 아주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회가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래봐야 주말에만 겨우겨우 병원을 찾았지만, 핑계를 대자면 ‘생업’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원, 그중에서도 정신병동 특유의 묘한 공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병원이라는 곳은 어릴 적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자 판타지를 담은 공간이었다.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는 하얀 건물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그곳이 정신병원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미친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일반인이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정신병원은 망태를 등에 짊어진 수상한 아저씨들(지금 기준으로 보면 재활용품 수거업자들이지만)과 7개의 비밀을 간직한(그리고 그 비밀을 모두 알게 되면 죽는다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함께 어린 시절 3대 미스터리였다. 그 미스터리의 장막 너머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의 느낌은 좀 섬뜩했다. 환자들 중 상당수는 눈에 초점을 잃고 있었고, 어떤 환자는 간호사에게 소리를 쳤고, 누군가는 다른 환자의 병실에 무단침입해 작은 소동을 일으켰으며, 또 어떤 사람은 혼자서 중얼대고 있었다.

면회차 출입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정신병동의 풍경은 점점 익숙해졌다. 여기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오고 가는 사소한 감정들이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밤에 잠을 안 자고 서성거려 짜증난다고 불평하던 할머니는 사실은 한동안 밥을 먹지 않으려던 엄마를 챙겨줬고, 우리가 면회갈 때마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던 아주머니는 엄마의 부식을 잘 모아두기도 했으며, 엄마의 입원 초기 엄마 주변을 서성거렸던 아저씨의 행동은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다른 환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입원 당시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맞아떨어진 듯했다. 엄마도 상태가 호전되면서 “여기 참 좋다. 좀더 있어도 좋겠다”라며 퇴원할 때까지 다른 환자들의 상담역을 자처하고 있었다.

정신병에 관한 미셸 푸코의 이야기는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한 가지에선 확실히 옳은 것 같다. ‘광인’이라는 정의는 ‘정상인’의 기준에서 만들졌다는 것. 현대의학의 놀라움은 약물로 이 정신병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엑스레이나 MRI로 진단되지 않으며 수술같이 명쾌한 치료법이 없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신병 또한 고혈압이나 신부전처럼 그저 질병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편견이다. ‘정신병자’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비정상’을 일컫는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나 독감 환자를 비정상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정신병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것은 지독한 편견이다. 어찌 이뿐이겠나.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HIV 감염자처럼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주류의 편견 속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의사 선생님은 정신병 치료에는 가족의 따뜻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수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