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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홍보-오락프로그램 밀월] 영화별 사례연구
강병진 2008-01-17

한다고 다 잘 되는건 아니지만…

공주님 이건 아니에요~

<싸움>의 김태희

영화 <싸움>의 개봉을 앞두고 이미지 변신을 전략으로 내세운 김태희는 영화홍보와의 안정적인 공조를 구축한 오락프로그램 대신 <체험 삶의 현장>과 <개그콘서트>에 출연했다. 하지만 결과는 네티즌의 비아냥뿐이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서울대공원 일일사육사로 일한 그녀에게 네티즌은 “일이 아닌 견학”이라고 성토했다. 당시 다른 출연자들(박남현, 배일집)이 연탄배달과 한우농장을 찾은 것에 비하면 김태희의 서울대공원에서의 하루는 사실상 미녀배우가 귀여운 동물과 망중한을 즐긴 것에 불과해 보였다. 미어캣에게 먹이를 주다가 그녀가 하는 말. “난 귀여운 동물들 쓰다듬으러 왔는데….” 아기고릴라를 만져보며 사진을 찍고, 10개월 된 아기 원숭이와의 이별에 찡한 눈물을 머금었는가 하면, 물개 방울이의 쇼 레퍼토리를 바로 눈앞에서 즐겼다. 이어서 출연한 <개그콘서트>의 ‘까다로운 변선생’ 코너에서는 ‘발악’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선생님이 사실 싸움을 되게 잘해요”란 대사로 영화의 제목을 언급하는 노력은 보였으나, CF에서 자체 발광하던 그녀가 “대머리 아니죠. 태머리 맞습니다. 순대 아니죠, 순태 맞습니다”라며 변 선생의 흉내를 내는 건 심히 어색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다른 배우들이 방송에서 1시간 이상 영화홍보를 할 때는 별말이 없었는데, 왜 김태희에게만 화살이 꽂히냐는 반문도 있었다. 어쩌면 김태희의 도전은 그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이 가진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신비롭게만 포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악플이 달리지만 그럼에도 대중은 그녀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검색은 1위, 흥행은 너무해

<용의주도 미스신>의 한예슬

한예슬의 나상실적 캐릭터를 활용한 원톱영화인 만큼 그녀 자체의 선호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야심만만>에서는 “조금만 이야기에 집중하면 반말이 나오는” 특유의 말투를 드러냈는가 하면, 옆자리에 앉은 이혁재의 가스방출을 고자질하기도 했다. 압권은 <무릎팍도사>였다. 대종상시상식 무대에서 삐져나온 뽕브래지어가 사실 누드브래지어라는 걸 도사들에게 가르쳐준 그녀는 <논스톱4>의 O.S.T인 <그댄 달라요>를 불렀고, 내친김에 <용의주도 미스신>의 주제가인 <Make Me Shine>까지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 힘든 연예계에서 나를 잘 꾸려가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보였으며 이어 바로 “나 완전히 꼴값이야”란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절정은 이른바 “오빠앙~~” 4종세트로 요약되는 한예슬의 애교강의였다. 깜찍하게 부르는 오빠앙~, 남자의 코피를 터트리게 만드는 오빠앙~, 사랑이 가득 담긴 오빠앙~, 애원하는 느낌의 오빠앙~ 까지. 무릎팍도사와 시건방도사는 몸서리쳤고 올밴은 “세명 다 변태 같다”는 말로 액션포인트를 얻었다. 결과는 당연히 검색순위 1위. 당시 프로그램을 시청한 영화홍보 종사자들은 <용의주도 미스신>의 대박을 의심치 않았지만 흥행결과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6위, 둘쨋주 12위에 머물렀다. <무릎팍도사>의 흥행보증 가도에 제동을 건 사례로 기록될 듯. 하지만 “이미 TV에서 다 본 한예슬의 매력을 굳이 돈 주고 극장까지 가서 볼 필요가 있었겠냐”는 분석도 있다.

심형래 자신을 신화로

<디 워>의 심형래 감독

<디 워>의 개봉을 앞두고 심형래 감독은 2007년 7월29일부터 8월1일까지 연이어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일요일이 좋다-옛날TV>는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다” 등 그동안 심형래가 남긴 어록으로 오프닝을 꾸렸고, <상상플러스>는 심형래의 오랜 개그 파트너인 임하룡이 함께 등장해 징한 파트너십을 보여주었으며, <무릎팍도사>는 “사람들이 시작도 안 한 제 영화를 놓고 망할 거라고 기를 죽인다”는 그의 고민을 처리했다. 프로그램들의 구성은 대부분 비슷했다. 먼저 심형래의 장기인 슬랩스틱 개그가 후배들에게 강의되고 그의 영화인생이 자료화면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으며, <디 워>를 만들면서 감독 자신이 느낀 고통과 감동을 들었다. 한 마케터는 그가 “<디 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전략으로 홍보에서 성공했다”고 말한다. 탱크를 섭외할 수 없다는 로케이션 매니저를 그 자리에서 해고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LA 시장, LA 경찰청장에게 편지를 써서 LA 시가지 전투장면을 만들었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영화적인 신화였다. <디 워>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네티즌과 평론가간에 논쟁이 벌어지자 이번에는 <100분 토론>까지 가세했다. <디 워>의 홍보전략은 이후 마케터들에게 “조금만 사회적인 이슈가 될 기미가 있는 영화는 시사잡지나 시사프로그램도 섭외대상으로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코미디언이 이룩해낸 전설적인 홍보. 영화마케터들에게도 2007년 8월은 전설이 탄생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감독도 괴로워

<바르게 살자>의 장진 감독과 <사랑>의 곽경택 감독

<디 워>의 심형래 감독 이후 영화감독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도 활발해졌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장진 감독과 곽경택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비슷했다. 일단 그들은 주연배우(정재영, 주진모) 대신 급하게 섭외되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영화감독으로 가진 고민들을 무릎팍도사에게 의뢰했다. 장진 감독은 “내가 기획하고 각본을 쓴 작품은 흥행하는데 내가 연출하면 그저 그렇다”는 고민, 그리고 곽경택 감독은 “<친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이었다. 아울러 그들은 이번에 제작하고 연출한 새 작품이 “이전 영화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장진 감독은 “역시 내가 연출하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봐도 재밌다”며 <바르게 살자>를 추켜세웠고, 곽경택 감독은 “<사랑>의 편집본을 본 장동건이 내가 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고 발언해 장동건을 사랑하는 무릎팍도사를 설레게 했다. 녹화현장에 없는 주연배우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전략도 공유한 듯 보였다. 장진 감독은 정재영과 전화통화를 시도해 “서로 빨아먹을 건 다 빨아먹었다”는 공방을 벌였고, 곽경택 감독은 “장동건보다 주진모가 연기를 잘한다”에 이어 “최민식보다도 주진모가 연기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농담스럽게 말했다. 이후 <바르게 살자>와 <사랑>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덕분에 충무로에는 “<무릎팍도사에>에 나가면 무조건 흥행한다”는 정설 아닌 정설이 나돌았다. 물론 영화 제작진들은 방송의 힘이 아닌 영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장진 감독은 <바르게 살자>가 200만명을 넘겼던 당시, <씨네21>의 ‘이주의 영화인 무엇을 이야기할까’ 인터뷰에서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게 주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가 다른 공중파 방송을 타지 못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도 결국 영화의 흥행을 마케팅이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A급배우 모시기

<그놈 목소리> 설경구, 김남주, 김영철, 김광규

데뷔 14년 만에 오락프로그램 출연! <놀러와>의 <그놈 목소리> 특집은 오락프로그램이 얼마나 A급배우들을 욕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설경구와 김남주를 보고 패널로 참석한 가수 김장훈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더랬다.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이분들도 우리가 신기할까요?” 게스트만큼이나 포맷 또한 신기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놀러와> 제작진은 설경구를 ‘모시기 위해’ 한 시간의 방송 분량 가운데 20분을 <그놈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 설경구에게는 “앵커연기를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냐”고 물었고, 김남주에게는 “가슴을 때리며 우는 연기를 어떻게 했나”, “<그놈 목소리>를 촬영할 때 남편인 김승우는 어떤 외조를 해주었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또한 영화의 조연배우인 김영철과 김광규에게도 직접 캐릭터 소개를 부탁하고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물었으며, 아울러 설경구의 영화소개와 함께 EPK클립과 메이킹장면을 내보냈다. 말하자면 <그놈 목소리>의 제작보고회나 다름없는 행사를 진행한 셈. 당시 <놀러와> 녹화를 앞두고 <씨네21>과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했던 설경구도 오락프로그램이 영화홍보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홍보쪽에서) 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잖아. 빼도 박도 못하게. 만약 나가서 좀 재밌게 해줘, 이런 식으로 부탁한다면 그건 영화 제목 알리는 것밖에 안 되지. 하지만 이번에는 필름(영화장면)이 (방송 중에) 나와버리니까 그런 홍보가 어딨어. 앞의 두 작품이 연달아 망하다 보니까 방송만큼 알릴 수 있는 매체는 없는 거 같아.”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현재 <강철중>을 촬영 중인 설경구가 또다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할지는 미지수다.

사진제공 KBS, MBC,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