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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위의 CF] 현실과 감동의 무한 상관관계

현실이 더 감동적이거나 현실이기 때문에 감동적인 CF들

감동적인 광고를 만들고 싶어하는 광고주(및 광고쟁이들)는 너무 많지만 15초, 길어봐야 30초 안에 사람들의 감동을 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복합적인 수많은 감정을 갖고 있는 지구 유일의 존재인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직접 연관되지 않는 제3의 일에는 감정이 박해 웃음 한번 내어주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웃는 건 기발하니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찰나의 순간에 가능하기라도 하다지만 도대체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사람을 감동시키라니 어쩌라는 노릇인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공감대가 필요하단 말이다.

응, 그래서 옛날 신파 영화들이 그랬듯 요즘 광고들이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입니다’라는 기법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나 공익 캠페인 형태의 기업광고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요즘은 더욱 자주 ‘낯설고도 익숙한’ 우리의 얼굴을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다.

CF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으로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에도 암투병 중인 부부라든지 눈물 찍 감동 스토리들이 방송사 공익캠페인의 탈을 쓰고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적이 몇번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것의 사람들을 많이 비추는 것도 드물었던 것 같다. 특히 UCC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그걸 기업들이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특수하고 희귀하여 울지 않을 수 없는 실제 사건보다는 아주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CF에 담아내는 것이 요즘의 경향인 듯하다. 큰 감동보다는 공감대를 노리겠다는 것이겠지.

푸르덴셜생명 CF ‘푸르덴셜 아빠’ 편

SKT CF ‘사람을 향합니다’ 편

이런 트렌드에서 단기간에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낸 것이 ‘푸르덴셜 아빠’가 아닌가 싶다. 푸르덴셜은 악명 높았던 ‘10억을 받았습니다’와 이 지면을 통해서도 언급한 ‘곁에 없어도 자식을 유학 보내는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를 돈으로 취급하는 CF만 선보인다며 비난을 면치 못했던 전적이 있다. 하나 요즘 선보이는 ‘푸르덴셜 아빠편’은 과연 이 CF가 같은 회사의 CF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빠’라는 컨셉의 일관성은 유지하되 전과 달리 보는 이를 저절로 웃게 만들고 있다. 퇴근하는 아빠를 향해 있는 힘껏 기어가는 아이의 모습과 저러다 숨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온몸으로 즐거워하며 꺄르르르 웃는 아기의 웃음소리를 통해 이미지를 한번에 역전한다. 어여쁘게 화장한 아역모델의 웃음이 아니라 흔들리는 홈비디오에 잡힌 실제 아기의 해맑은 웃음과 아빠를 향해 온 힘으로 기어가는 아기의 모습에 흐뭇해하지 않을 이 어디 있으리오. 한 지인은 양치를 하고 있다가도 그 아기 웃음소리가 나오면 욕실 밖으로 나와 TV를 보게 된다고 하더라. 누군지 몰라도 전략 참 잘 수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감동 캠페인의 대표작으로 선두에 서 있는 SKT의 ‘사람을 향합니다’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흑백 화면과 잔잔한 음악으로 통신과 사람 사이에 놓인 따뜻한 이야기들을 참으로 잘도 집어낸다 싶었는데 요즘엔 아예 실제 고객의 사연으로 캠페인 시리즈를 내놓는가보다. 머리 ‘꼬라지’가 그게 뭐냐며 아들 얼굴은 보지도 않고 핀잔주는 권위적 아버지, 또 시작이냐며 불만 가득한 아들이 그러나 아버지 휴대폰에 자신이 ‘나의 희망’이라고 입력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깊은 속마음을 이해한다는 그런 CF다.

휴대폰을 통해 사람 사이의 정을 이야기하는 캠페인의 일관된 톤도 훌륭하고, 에피소드 자체도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다’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우와’ 하며 한번 더 감탄한다. CF를 위해 짜인 이야기라면 ‘다 그렇지 뭐…’라는 반응과 함께 피식 한번 웃고 넘겼을지도 모르는 그 짧은 이야기가 ‘실제’의 옷을 입는 순간 감탄사로 변한다. 저렇게 권위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짠한 것이 있다. 그러게 진작 사랑한다고 표현해주지 그러냐고 투덜거려도 감춰진 애정에 미소를 보낼 수 있다. ‘어머, 저런 에피소드가 진짜로 있다니 기분 좋네’라며 마음을 내어준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친밀감과 공감대, 그리고 나에게도 저런 기분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의 복합체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실제에 대한 너그러움’ 덕분에 이런 CF들이 많이 쏟아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짜여진 상황을 보아온 사람들은 허구라면 더 많은 정교함과 울림과 놀라움을 보고 싶어 하기에 웬만한 것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 ‘실제 사건’에는 더 많이 집중하고 공감하며 감동한다.

한 가지 궁금한 건 정말 현실이 더 감동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현실이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인지 하는 것. 점점 일상 속으로 들이대는 카메라에 일상이 카메라를 닮아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슬쩍 스미기도 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