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디아블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건, 현찰 박치기가 가능한 아이템도, 조잡한 영웅심리를 충족시켜주는 ‘PK’도 아니었다. 어둡고 음침한 곳을 혼자 나아가는 기분,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문을 천천히 여는 공포감에 다들 두려우면서도 끌려갔다. 이름이 어딘지 모르게 한국회사 같은 ‘클릭 엔터테인먼트’는 <디아블로>를 만든 제작팀이 ‘블리자드’에서 독립해서 만든 회사다. 이들은 <디아블로>의 공포를 더욱더 강화하려고 했다. 공포보다는 다양한 아이템이나 게임의 볼륨에 강조를 둔 <디아블로2>와는 다른 방향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철저한 ‘왜색’ 게임을 만들어냈다. 야마토시대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에 미야모토 무사시까지 총출동해 악에 사로잡힌 군주와 맞서 싸운다. 터무니없는 역사적 설정을 제쳐두면 어딜 보나 <디아블로>와 똑같은 구성이다. 그들은 서양인의 눈으로 보는 일본적 폭력과 잔인함을 원했던 것 같다. 순수한 악에 대한 탐닉, 집단에 대한 집착, 또 차고 넘치는 피와 시체. 게임 그래픽은 어떤 호러영화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산산조각난 시체들, 피가 빨려서 말라 비틀어진 사람들, 난교와 강간의 이미지들, 일본 지옥도에서 흔히 보이는 잔혹한 모습들이 재현된다. 국내에 게임이 출시된 게 신기할 정도다.
<디아블로>부터 왜색이란 얘기는 이미 있었다. 게임 배경은 서양 판타지 세계지만, 미국 게임치고는 어딘지 일본풍이었다. 사실 동양인이 보기엔 어딘지 어설픈 서양인의 일본풍 추종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쓰론 오브 다크니스>는 ‘하드고어 왜색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세상에 나왔다. 광고나 언론 플레이 역시 ‘잔인함에 놀랐다’거나 ‘예술성을 위해 커팅은 하지 않겠다’는 식의 카피문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게임에는 시스템이란 게 있다. 피에 굶주린 하드고어 팬들이라도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끔찍하고 잔인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클릭엔터테인먼트는 이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들은 <디아블로>와는 달리 네명의 캐릭터를 사용하는 팀 플레이를 고안해냈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네명을 번갈아 움직이면서 적의 움직임이나 지형지물 등에 따라 진형 역시 수시로 바꿔야 한다. 낯선 시도지만 시스템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하다 보면 재미있다. ‘걸작’이니 ‘역작’이니 하는 칭호는 가당치 않지만 열성팬을 거느린 컬트 게임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이 게임은 공포를 주는 것일까? 답은 부정적이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건 혼자라는 생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군중 속에서도 공포를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 느끼는 공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은 나 혼자’라는 느낌이다. 그때 주위의 다른 것들은 정지해버리고, 순수하게 공포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쓰론 오브 다크니스>의 시스템은 공포를 희석시킨다. 번잡하게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무서워할 틈이 없다. 분명 재미있는 시스템이지만 겉껍질과는 따로 노는 기묘한 결과가 나와버렸다. 그러니까 무섭진 않고 재미있는 하드고어 호러 게임이란 얘기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