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후>(Doctor Who) 시즌3 KBS2 일요일 오후 11시35분
이미 ‘미드’라는 단어는 언론에서도 ‘미국 드라마’라는 별도의 설명없이 사용될 정도로 아주 보편화되었다. ‘미드’까지는 아니지만 ‘일드’ 역시 일본 드라마 마니아가 늘어나면서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드, 일드 못지않게 중드(혹은 대드), 영드라는 신조어들이 여기저기서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일단 대만 드라마가 주축이 되는 대드 혹은 중드는, <동방 줄리엣> <공주 소매> <화양소년소녀> <장난스런 키스> 등 과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포청천>과는 전혀 다른 트렌디드라마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른바 중드계의 욘사마로 불리는 오존(吳吉尊)이라는 스타배우의 등장은 그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중드 혹은 대드가 문화적 코드에서 국내 드라마들은 물론 일본 드라마들과 유사한 동시에 차별화되는 면을 가지고 인기를 끌고 있다면, 영드는 미드와 그러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영드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닥터 후>와 <스킨스>다. 이중 <스킨스>는 영국 청소년들의 거식증, 마약, 섹스 등에 대한 거침없는 보고서 형태의 드라마로, 다소 뻔한 설정에서 맴돌게 마련인 <가쉽걸>류의 미국 성장드라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작품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19금이 되어야 마땅한 장면들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에 버젓이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어느 미드보다 더 큰 문화적 충격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영드’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국내에서도 절찬리에 방영 중인 시간여행 SF <닥터 후>라고 할 수 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오래 방영된 SF드라마로 알려진 <닥터 후>가 처음 전파를 탄 것은 무로 44년 전인 1963년. 교육적인 내용으로 가족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뒤, <닥터 후>는 1989년까지 무려 시즌26 동안 694개 에피소드를 방영하면서 영국 대중문화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그동안 닥터 후를 연기한 배우만 총 7명이었으며, 그들은 닥터 후 캐릭터에 부여된 이른바 ‘재생성’(regenerate) 과정을 거쳐 새로운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1회부터 10대 닥터 후의 모습.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고 7대 닥터 후가 등장하던 80년대 말, 식상한 내용의 반복 탓인지 시청률이 떨어지자 제작사인 <BBC>는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다 미국 폭스, 유니버설 영화사와 <BBC>가 공동으로 1996년 8대 닥터 후가 등장하는 TV영화를 제작해 방영하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미국에서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계획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팬들의 오랜 기다림이 해소된 것은 방영 40주년을 맞은 2003년, <BBC>가 새로운 <닥터 후>의 제작을 공식화하면서부터였다. 2005년 클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을 8대 닥터 후로 등장시킨 <닥터 후> 시즌27(혹은 그냥 시즌1)은 예전의 인기를 다시 끌어모았고, 그 뒤를 이어 데이비드 테넌트가 닥터 후를 맡은 시즌2와 시즌3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기에 이른다.
주목할 것은 그 역사가 긴 만큼 <닥터 후>가 많은 SF 영드의 산파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직접적으로 스핀오프된 영드로 유명한 작품들을 꼽으면, <토치우드>(Torchwood)와 <사라 제인의 모험>(The Sarah Jane Adventures)이 있다. <닥터 후>의 영문 스펠링상의 영문자들을 재조합해 만든 프로젝트명에서 시작된 <토치우드>는 일종의 ‘영국에서 CSI팀들이 펼치는 X파일 이야기’ 컨셉으로, 토치우드 인스티튜트라는 비밀기관의 웨일스 지역팀원들이 외계 생명체 혹은 초자연적 현상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한편 <사라 제인의 모험>은 <닥터 후>에 등장했던 탐사 전문기자 사라 제인의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 드라마로 2007년 초 방영을 시작해 시즌1을 끝낸 상태다.
이 밖의 수많은 연극 작품과 영화 등에 직접적으로 등장했을 만큼 <닥터 후>는 영국 대중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우리 시청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저주받은 자들의 여행>(Voyage of the Damned)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크리스마스에 방영된 시즌4의 첫 에피소드에 대한 영국 내 반응을 궁금해하는 국내 팬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이러한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