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회고록 19회- 유현목
“유현목 감독은 사탄이다!” 이 글은 당시 유력한 기독교신문(주간지)에 실린 커다란 글자의 표제였다. 또한 이 글을 쓴 이는 당대 기독교 음악계의 거두였고 지금은 고인이 된 분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나에게 악마라니? 경악한 나는 차츰 잔잔한 웃음으로 바뀌면서 기사내용을 끝까지 읽었다. 1965년 나의 작품인 <순교자>가 기독교계에 파문을 던진 것이다. 문제가 된 대목은 “하나님은 없다”는 주인공 신 목사의 대사와 인민군에 학살당하는 열두 목사가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하면서 최후를 맞는 장면이었다.
이 작품은 재미작가 리처드 E. 김(김은국)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실존주의적 경향의 소설 <순교자>는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리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된 문제작이었다. 곧이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였다.
나는 곧 영화화하기로 결정하고 무신론적 입장이 아니라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줄곧 테마로 삼았던 ‘하나님이여 숨어계시지 마시고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시고 은총과 구원을 베풀어 주시옵소서’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면서 각색작업에 착수했다.
흥행물이 아니어서 지방흥행사들은 시나리오 읽기도 어렵고 무겁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좀체 지원하려 하지 않아서 결국은 내가 제작자 겸 감독으로 어려운 출발을 했다. 어느 독지가가 그때 돈 200만원을 내줬고, 스탭, 캐스트들은 후불제 약속에 응해줬다. 큰 규모의 오픈세트들은 재료값만 받고 제작해주는 등 고마운 상황에서 제작을 끝낼 수가 있었다. 60년대 당시의 평균 제작비는 대충 800만원대였는데 냉면값이 500원이던 시절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중, 국군이 평양에 진군했을 때 그 정보장교들이 12인의 목사들이 무참히 순교당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원래는 목사가 14명이었는데, 두명의 목사가 살아남았다. 김진규가 분한 신 목사와 젊은 미친 목사였다.
신 목사는, 그 열두 목사들은 끝끝내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총살당했다며 지극히 성스러운 순교자들이라고 칭송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총살현장에서 살아남았는가란 추궁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모든 신도들은 신 목사에게 의혹을 품고 격분하면서 돌팔매질을 하며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순교현장을 진두지휘했던 인민군 첩보장교가 평양에 침입했다가 잡혀서 진상을 밝힌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열두 목사들은 총부리 앞에서 살려달라고, 하나님은 없다고 애걸복걸하는 비겁한 꼴을 보여서 쏴죽였고, 젊은 목사는 존경하는 목사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바람에 미쳐버려서 살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신 목사만이 당당히 하나님은 계신다라고 외치며 하늘을 향하여 “이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오”라고 큰소리로 기도를 올렸고, 인민군 첩보장교는 이제야 참다운 성직자를 만났다며 그를 살려주었다고 증언했다.
그뒤로 신 목사는 고통받는 민중을 향하여 “하나님을 굳건히 믿으시오.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요, 절망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라는 설교를 끊임없이 계속한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상황에서 민중은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기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 목사는 “하나님은 없다. 그러나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절규한다.
이와 같은 줄거리는 실제 있었던 사실이 아니고 다만 ‘서로 사랑하라’라는 테마를 부각시키기 위한 허구의 극적 구성일 뿐이다. 한 개인인 성직자가 무신론으로 변절했다고 해서 엄연한 신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러한 순교자들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줄거리가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기독교인들의 반발은 심했다. 순교자들을 모독했다고 흥분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의 지식인들은 주제의식을 이해하며 많이 관람했지만 지방에서는 교인들이 극장 앞에서 같은 교인들이 접근해 오면 “악마의 영화”라고 선전하면서 한사코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제작을 겸했던 나는 흥행에 실패하여 빚만 짊어지게 되었고 모든 스탭들에게도 후불제의 약속을 어겼기에 이 글을 통해서 양해를 바라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참다운 ‘사랑’을 강조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전언하려던 연출의도를 마저 읽지 못하고 반발했던 교인들에게 뒤늦게나마 깊은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