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합동토론회에 나온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과 다름없었다. 논리 전개는 허술했고, 음절 경계는 흐리터분했다. 그 알아듣기 힘든 언어는 게다가 구체성의 살을 발린 채 관념의 뼈대로 앙상했다. 동문서답도, 썰렁한 유머도 여전했다. 요컨대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처럼 공부 없이, 준비 없이 토론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 배짱이 그를 설핏 신참자 이명박씨와 닮아 보이도록 했다. 아무런 사전정보나 선입견 없이 토론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우등생 넷 사이에 낀 열등생들로 판단했을 것이다. 끝끝내 텔레비전 토론을 거부한 채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가 텔레비전 토론이라는 것을 했다면, 아마 권영길씨나 이명박씨 식으로 해치웠을 것이다. 메떨어진 억양과 빈약한 가용어휘로 말이다. 그러니 민주노동당에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권영길씨가 아니라 심상정씨나 노회찬씨가 앉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한다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아니,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후보 중 누구라도, 그가 권영길씨 자리에 놓였다면, 한결 더 효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중도우파 세력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진보정치의 공간이 외려 넓어질 수도 있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제 후보를 잘못 골랐다는 뜻이다. 주류 정치세력 후보들 모두를 선택지에서 제쳐놓은 유권자들도 권영길-민주노동당에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눈치다. 뭔가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이 꼭 권영길씨 개인의 매력이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정작 개운치 않은 것은 권영길씨를 아슬아슬하게 민주노동당 후보로 만든 정파의 이념적 봉건성이고, 좀처럼 화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민족지상주의자들과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의 당내 혼거 상황이다. 이질적 정파의 이 혼거는 갈등을 조정할 당내 정치력의 부족으로 자주 파열음을 낳고, 그 파열음은, 보수정당에서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사소한 추문들과 맥놀이를 만들어내며, 기호 3번에 표를 주기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다면적이고 상대적이다. 권영길씨는 다른 후보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 다른 삶은, 진보 유권자들 처지에서는, 존경할 만한 삶이었다. 신문기자로 일할 때 그가 얼마나 노동계급 지향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는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또는 그 전위에 있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경선을 거쳐서 그 당의 후보로 뽑혔다. 그것은, 이번이 몇 번째 출마든, 그가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다.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이 권영길씨 개인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기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자주와 통일 담론에 대한 완고한 집착이 이 당의 노동계급 정체성을 많이 흐려버리기는 했으나,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안에서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해온 유일한 정당이라는 사실은 엄연하다. 법적 출발로만 따져도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정당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사회·정치적 역사가 2000년 1월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정당에는 군사파쇼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던 노동운동의 흐름들이 합류했고, 해방기까지 올라가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흐름들이 합류했다. 그러니까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은 한국 노동계급의 역사와 그 미래에 투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그 근본이 조직노동자들의 정당이긴 하나 적어도 다른 정당들에 견줘서는 우리 사회의 순정(純正) 아웃사이더들에게까지 눈길을 건네왔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80만 조합원이 각자 10명씩을 조직하여 800만 표를 노동자 후보에게 몰아주자”고 호소했다. 꼭 10명씩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제가끔 가족 친족 유권자들만 설득해도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미증유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조직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들 자신이 지역을 비롯한 이런저런 연고에 이끌려 표를 ‘반-노동자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일 테고, 민주노동당 안의 이른바 자주파마저 수구세력 집권 저지라는 대의와 민족주의 열정에 휘둘려 중도우파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실천했기 때문일 테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보수정치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데다 그 보수세력이 민생은 몰라도 민족주의 열정은 살려낼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지금은, 비판적 지지를 철회하고 계급투표를 하기에 딱 좋은 계제다. 물론 그런다고 권영길씨가 대통령에 당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치를 시험의 모의고사 점수 노릇은 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범여권이 재집권하든 한국 노동계급에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노동계급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