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좀 써주세요.” 지난 1년간 <씨네21> 기자로 살면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말이다. 담당영화사가 제작하고, 수입하고, 홍보하는 영화들이 개봉을 앞둔 시점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이 말은 기자의 역할부터 인간관계, 처세술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담당영화는 담당기자가 신경 쓰는 게 맞다. 어떤 감독, 배우가 참여하고 어떤 이야기인지, 언제 개봉하고 시사는 언제 하는지.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다루어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 업무다. 또한 영화를 개봉시키는 입장에서도 슬쩍 던지거나, 정색하고 이야기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있는 말이다. “신경 좀 써달라”는 그 말이 종종 내 업무의 한계를 넘어서다 못해 심한 억지처럼 느껴지지만 않는다면.
최근 어느 담당영화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이었다. “일단 영화를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러 가지 기획아이템을 보낼 테니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이 다시 돌아왔다. 나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기획을 사람이 만드나요. 영화가 만들지요.” 그러자 듣기에 참으로 난감한 말이 돌아왔다. “영화가 좋지 않아도 담당기자가 신경을 써주면 기획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번에도 <씨네21>에 아무것도 나가지 못하면 정말 서운할 거예요.” 저런, 어디서 그런 기획기사를 보셨기에. 혹시 <디 워>와 관련한 그 무수한 기획들을 보고 하신 말씀인지. “신경 좀 써달라”는 그 말이 내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까지나 담당기자로서의 내 역할은 그들의 영화가 <씨네21>의 논의대상에서 논외로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고, 만약 기획안에서 빠졌다면 그건 영화를 본 <씨네21> 기자들의 판단에서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무슨 뜻인가.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인 건가, 아니면 자기 딴에는 열심히 일을 해보겠다고 한 말일까. 매주 수요일 밤에 열리는 <씨네21>의 기획회의가 기자들이 담당영화 리스트를 놓고 펼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도 아닌데, 나에게 거간꾼이 되라는 건지. 곤혹스럽다 못해 난감했고 당혹스러운 한편 기분이 상했다.
어쩌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설마 그렇더라도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이 “억지를 부려달라”고 당부하는 뜻으로 들리는 건 심란하다. 담당영화를 챙기는 업무에 소홀한 나를 탓하거나,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말이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또한 한편으로는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은 기자인 내가 해야 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일 듯싶다. “표지는 다른 잡지보다 저희가 먼저 할 수 있도록 신경 좀 써주세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기획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으니, 제발 감독님 인터뷰 좀 신경 써주세요”. 혹시나 유명감독과 배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화가 있었다면 뒤돌아서 눈물 흘리며 후회하고, 회사 안에서 ‘담당영화도 제대로 못 챙기는 놈’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게 맞는 일일 것이다. “영화가 좋지 않아도 신경 써달라”는 말을 들으며 기분 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욕먹어서 슬퍼지는 게 피차 발전적일 테니까. 부디 새해에는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일이 많기를. 그러니 제발 좋은 영화를 만드시는 데 신경 좀 써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