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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인용 대통령
고경태 2007-12-21

“너무 좋아, 굉장해.” “제가 입에 좀 넣어도 될까요?” … “조철봉은 어느새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이렇게 대담하고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상황은 처음인 것이다.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사인하는 분위기와 같다.”… “‘맛이 있어요.’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장선옥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눈웃음을 치는 얼굴을 보자 조철봉의 가슴이 미어지면서 목구멍이 찌르르 울렸다.”

조철봉은 살아 있다. 한때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조철봉이 너무 안 하는 것 같다”며 섭섭해했다지만, 조철봉은 요즘 활발히 하고 있다.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인 그 조철봉 말이다. 인터넷판에는 칭찬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독자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쓰니 얼마나 좋아. 독자들도 많아지고….”

조철봉은 ‘대북사업’에도 한창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평화무역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최근 취임한 그는 북한의 천리마무역 부대표인 장선옥과 ‘딜’을 하는 중이다. 빼돌린 비자금의 분배비율을 놓고 탐색전에 돌입했다. 이 글이 실린 <씨네21>이 나올 때쯤이면, 두 남남북녀는 벌써 침대가 놓인 링에서 한바탕 겨뤘으리라 예상된다.

조철봉은 뻔뻔스럽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다. 그 무기는 주로 ‘철봉 휘두르기’다. 이 낯뜨거운 소설에 대해 신문윤리위원회가 수십 차례에 걸쳐 주의경고를 내렸고, 여러 여성단체가 연재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철봉은 오히려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둔갑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문화일보> 구독을 중단하고, 일부 여당 의원들이 그 선정성을 공격하면서다. <문화일보>는 시련에 처한 조철봉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한때 철봉으로 하여금 조금 덜 하도록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강안남자’는 중국 신서에 나오는 ‘강안여자’를 모방한 제목이라고 한다. 얼굴이 강한(强顔) 남자를 뜻한다. ‘강하다’는 ‘두껍다’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소설 <강안남자>를 읽으며 대통령 선거 전선에서 활약하는 또 다른 강안남자를 떠올렸다. 10일도 안 남은 대선에서 강안남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상당수 독자들이 “추진력이 ‘강’하다”는 한 후보를 동시에 찍었으리라.

그는 최근 멋진 텔레비전용 정치 광고를 선보였다. 욕쟁이 할머니의 꾸중을 들으며 꾸역꾸역 국밥을 먹는 모습은 일견 훈훈하게 비칠 만했다. 네거티브로 시작했던 한 여권 후보의 광고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감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한데 그 광고를 되풀이해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그는 밥만 먹을까?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뭔가 대꾸가 있어야 예의 아닌가?

그동안 많은 이들이 그를 상대로 욕쟁이 할머니 노릇을 했다. 욕을 하는 아이템도 다양했다. 자녀의 위장전입, 위장채용,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와 부동산 투기 의혹, 마사지걸 비하 발언,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서의 불법 성매매…. 그러나 그는 별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낯은 강했다. ‘강’해서인지 지지율은 끄떡하지 않았다.

소설 <강안남자>를 열심히 찾아 읽는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며 강추한다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 그 소설에 관해 도덕적으로 심판하고 훈계를 늘어놓는 일은 진부해 보인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에게 “참 재밌는 소설”이라며 일독을 권유할 부모는 없다. 그건 성인용이다. 소설 <강안남자>처럼 대통령 후보인 그에게서도 ‘성인용’ 냄새가 난다.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미·적분 수학문제처럼 어려운 BBK야 검찰이 무죄라고 우기는 상황이니 일단 제쳐놓고, ‘2차’는 또 무엇인가. 그는 여성단체 토론회에 참석해서 “2차가 뭔지 잘 이해를 못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당신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건물 지하의 유흥업소에서는 여성 종업원들이 2차도 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스리슬쩍 넘겼다. 그 유흥업소의 간판들은 내가 사는 수도권 신도시에도 넘친다. 일곱살짜리 우리집 꼬마에게 ‘ㅇㅇㅇ섹시클럽’ 간판을 가리키며 “우리 새 대통령님 소유의 빌딩에서도 저런 집이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벌었단다”고 설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멋쩍겠다. 18살 이하를 접근 금지시켜야 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성인용 대통령 후보’라는 말인가.

어? 진짜 ‘성인용’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뜬 그의 광고 동영상을 클릭했다. “명박 오빠, 못 믿어? 극비영상 대방출”이라는 큼지막한 헤드라인과 함께 “본 콘텐츠물은 19세 이상 관람을 권장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떠 있다. 18금에 준하는 표시까지 돼 있다. 깜짝 놀랐는데, 그 밑에 “사실은 전체 이용가~ ㅋ”라는 또 다른 문구가 흘렀다. 썰렁한 농담, 으로 위장한 진담처럼 느껴졌다.

‘밤의 대통령’ 조철봉은 눈앞의 비즈니스에 성공할 것인가. ‘낮의 대통령’ 후보인 이 아무개씨는 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강안남자’들의 운명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