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의 <서툰 사람들>이 <연극열전2>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2004년 15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극열전>에 이어 2007년 새롭게 기획된 <연극열전2>는 2007년 12월7일부터 2009년 1월4일까지 10여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연극 프로젝트. 장진 감독,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 추상미, 이순재, 나문희, 유지태, 황정민 등 충무로에서 지명도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하는가 하면, 조재현이 직접 프로그래밍해 화제를 일으켰다. 그중 첫 공연인 <서툰 사람들>은 장진 감독이 10년 전에 극본을 완성한 작품. 부산에서 장기공연된 바 있지만 장진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홍 잠옷과 검은 점퍼. 고장난 롤렉스 시계와 뚜껑 달린 키티 시계. 혹은 중학교 영어 교사와 도둑. 장덕배와 유화이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이들이다. 하긴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털러 들어온 도둑과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서툰 사람들>은 집주인과 도둑으로, 나중에는 마음맞는 친구로 몇 시간을 함께 지낸 두 사람 사이에서 은근히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유쾌하고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깜찍한 소동극이다. “방범마저 화투를 치고 있”다는 어느 허술한 동네의 작은 독신자 아파트. 유화이가 잠자리에 든 사이 장덕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칼을 들이민 장덕배 앞에서 잠시 벌벌 떨던 유화이는 곧 두렵지도 않은지 조목조목 말대꾸를 하기 시작한다. 유화이의 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던 장덕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와의 수다에 완전히 말려들고 만다. 몽타주까지 배포됐다고 소리치긴 하지만 장덕배는 누가 뭐래도 서툰 도둑이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만원을 남겨두고 가겠다는 도둑의 배려에도 비상금까지 챙겨주려 하는 유화이 역시 누가 뭐래도 서툰 집주인이다. 순수한 남녀가 우연히 빚어내는 마법 같은 감정의 스펙트럼. 창문 밖으로 첫눈이 흩날리는 순간, 결코 맺어질 것 같지 않던 둘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
<서툰 사람들>은 전염성이 강한 작품이다. 장진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한 대사는 객석을 쉽게 폭소로 젖어들게 하고, 장덕배와 유화이의 해피엔딩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발걸음을 몰라보게 가볍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힘든 연극이다. 1시간45분 동안 퇴장이나 암전 한번 없이 가야 한다”는 장진 감독의 설명대로 무대 여기저기를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배우들 또한 박수갈채를 받을 만하다. 유화이 역에 장영남, 한채영이 더블 캐스팅됐으나 한채영이 연습 도중 부상을 입어 12월 공연 중에는 장영남만이 무대에 오른다. 장덕배 역에는 류승룡, 강성진이, 김추락, 서팔호, 유달수 역에는 이상훈과 김원해가 1인 3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