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내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열여섯 번째 기증품은 장남 김동원씨가 기증한 김기영 감독의 친필 수첩입니다.
“뭐야, 릴이 바뀌었잖아!” 잔뜩 긴장한 채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이층 공간의 기괴함에 몰두해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극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화가 끝난 뒤, 모두를 당황시켰던 그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영화를 만든 감독임을 알게 됐다. 착오가 생겨 필름 릴의 일부 순서가 바뀌었던 것. 1997년 부산에서 열린 김기영 감독 회고전에서 생긴 작은 에피소드였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기괴한 감각의 영화를 만들었고 현장에서도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던 김기영 감독에게 사실 이쯤은 이야깃거리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젊은 관객에게 재발견되었지만 김기영 감독은 다음해 6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영영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생각하면 죽음마저 영화 같았던 고 김기영 감독, 얼마 전 자료원에 그가 남긴 유품들이 기증되었다. 스탭에게조차 안 보여줬다던 그 유명한 콘티에서 친필 시나리오, 수첩, 안경 같은 개인 유품까지. ‘◎밖게 안 나가고 禁慾的 生活하든 女子가 美容院가서 머리型 바꾸고 와서 殺害되다’ ‘정신은 聖女 몸은 娼女 「하나님 나쁜자식 우릴 娼女로 만들었다… 차라리 죽엄을 다오, 오히려 인간은 거룩하다…」’ 떠오를 때마다 써나간 듯 대사며 아이디어며, 여백마다 적혀 있는 수첩의 글귀마저 그의 영화처럼 비범하다. 여기저기 불에 그을리고 얼룩진 자국에서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을 감지케 하는 소중한 유품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2008년 김기영 감독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전작전과 함께 다시금 우리 곁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