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오프라인 음반숍에는 로버트 플랜트의 신보 <Raising Sand>와 레드 제플린의 새 베스트 음반 <Mothership>이 나란히 놓여 있다. 둘 중에 뭘 고르겠는가? 제플린의 해체 이후 플랜트는 지금까지 여덟장의 스튜디오 음반을 발표했다. 대부분이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무난한 평가를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 플랜트의 작업 중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지미 페이지와 함께 제플린의 곡들을 다시 부른 단발성 프로젝트 <No Quarter>(1994)였다(페이지와 함께한 작업 중에는 그 유명한 <Sea of Love>가 들어 있는 <The Honeydrippers: Volume One>(1984)도 있다). 플랜트의 이번 신보에는 페이지도 없고, 제플린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나는 사람들이 공들여 리마스터링된 음원과 실황공연 DVD를 담은 <Mothership> 대신 <Raising Sand>를 택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Raising Sand>는 플랜트의 솔로 음반이 아니다. 그와 함께 음반을 만든 이는 올해로 37살인 블루그래스-컨트리 뮤지션이자 뛰어난 솜씨의 피들(fiddle: 컨트리음악에 사용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한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다. 그쪽 분야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얻고 있는 베테랑이지만 사실 그녀가 태어났을 때(1971) 제플린과 플랜트는 <Stairway to Heaven>을 녹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플랜트와 크라우스의 음악적 지분은 동등하며, 여기에 유명 컨트리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T-본 버넷(T-Bone Burnett)이 음반의 전체적인 사운드를 담당했다.
결과는 환상적이다. 흔히 ‘안개 같다’(atmospheric)는 형용사로 설명하곤 하는 촉촉한 사운드에서 플랜트와 크라우스는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컨트리, 포크, 블루스 넘버들을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부른다. 음반의 수록곡들은 기존의 곡들을 리메이크한 것이지만 마치 새로 만든 곡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원곡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음반의 사운드와 편곡 방향을 통일성있게 설정한 버넷의 솜씨 덕이 더 크다. 애간장을 녹이는 <Killing The Blues>, 과하지 않은 활력이 가득한 <Gone Gone Gone(Done Moved On)>, 크라우스의 피들 연주와 함께 ‘제플린스러운’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들려주는 <Nothin>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순간이다. 사자후(獅子吼)로 유명했던 헤비 로커가 자신의 사자후를 완전히 거두는 순간 그의 솔로 작업 중 가장 완성도 높고 의미있는 결과물이 탄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그것이 또한 음악이 가진 예측할 수 없는 매혹이기도 하다. 세월이 좀 지나면 이 음반이 밥 딜런과 더 밴드(The Band)의 전설적인 음반 <The Basement Tapes>(1975)에 비교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뜻밖의, 그리고 기분 좋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