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수목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는 가슴을 후벼파는 ‘최루탄’표 마니아드라마의 계보에 오르기에는 피학의 중독성은 덜하다. 주인공인 인순이(김현주)가 세상의 끝에서도 깨진 무릎을 후후 불며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를 외치듯 감성의 암과 명을 담백하게 가로지른다.
그것이 KBS 미니시리즈의 저시청률 행진에 구세주로 튀어오르지 못하는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좀더 확실한 이유는 MBC <태왕사신기>, SBS <로비스트> 등 선발 대작의 틈에 끼였다는 대진표 탓이겠지만 더이상 미련을 둘 구석이 없어 보이는 <로비스트>에마저 반절의 시청률로 뒤지고 있다는 것은 그 극성의 결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태왕사신기>가 떠난 새 판의 경쟁에서는 몰아치는 듯한 일방적인 호소 대신에 관조의 틈새를 주는 이 드라마의 중저음이 조금은 더 울림을 발휘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나에게 말 걸기’를 자꾸만 유도하는 드라마다. 살인 전과자 출신의 ‘인순이’는 <고맙습니다>의 ‘영신’(공효진)이 그랬던 것처럼 ‘내 팔자에는 부디 그런 불운이 없기를…’ 싶은 주홍글씨를 지녔다. 인순이는 세상의 편견과 부대껴야 하는 인간의 탈을 쓴 ‘천진한 성녀’라는 측면에서는 ‘영신’과 닮았지만 엄마의 단단함을 겸비한 영신에 비해 왠지 텅 빈 눈으로 태연하게 옥상에서 몸을 던질 것 같은 위태로운 면모도 노출한다.
혼잣말이 많은 그는 나름의 통찰력도 지녔다. ‘교도소에 있을 때는 세상에 나가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고, 그 다음에는 엄마만 만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라고 말을 흐리며 체념을 버무리는 그는 이 고약한 아이러니의 세상을 계속 질주하는 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기대와 포기, 꿈과 현실의 쳇바퀴에 어깨가 처지고 눈물범벅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더라도 ‘나는 예뻐. 특별한 존재야’라는 거짓말을 외치며 끝없이 ‘나’를 확인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로 자주 등장하는 인순이의 내레이션은 웃음 이면의 상처를 아프게 전달하면서 시청자한테도 반성과 치유의 속엣말을 술술 추동한다.
극중 인순이는 자살하려다가 엉겁결에 사람을 구한 뒤 ‘지하철녀’로 영웅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한 물간 배우 엄마의 이슈메이킹에도 활용되며, 나중에는 매스컴의 거품으로 난도질도 당한다. 제멋대로인 타인들 가운데는 전과자 이력을 듣고 ‘급실망’의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피붙이와 동무도 있다. 엄마(나영희)와 ‘상우’(김민준)가 솔직함과 처연함을 겸한 속물 캐릭터로 현실적인 옷을 입고 있는 것도 ‘내가 인순이 앞에 선 그들이었다면?’이라는 반추의 혼잣말을 유도한다. 어쭙잖은 이타심, 모성애, 순애보 등을 밀어붙이지 않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선악의 유치한 판정없이 부드럽게 천사표의 위선을 도려내고 있는 점도 생각의 여백을 부여하는 대목이다.
푼수 같고 순진하면서도 선한 마력이 있는 인순이를 전형적이지 않은 완소의 대상으로 채색 중인 일등공신은 김현주다. 감성의 날숨과 들숨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김현주의 연기는 타인에게 휘둘렸다가도 그것을 자기애로 갈무리하는 인순이의 생명력과 잘 맞물리며 ‘예쁘다’라는 단순명쾌한 정의에 풍부한 숨결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