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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저패니메이션의 최전선, <철콘 근크리트>
ibuti 2007-12-14

13년 전, 특수효과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마이클 아리아스는 회사의 파산 뒤 일본으로 떠났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던 그는 마쓰모토 다이요의 만화 <철콘 근크리트>(아이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하는 데서 착안한 제목)와 조우했고, 자기가 말로 표현 못한 심정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만화에 매료당했다. 그 시절, 지하철 안에서 만화책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는 아리아스가 10년의 구상과 3년의 제작 끝에 애니메이션 <철콘 근크리트>를 내놓은 건 2006년 12월이었다. 급성장하는 신도시에 둘러싸인 미개척지, ‘다카라쵸’에 두 소년 ‘쿠로’와 ‘시로’가 산다. 1급 우범소년인 두 아이는 폭력을 생활수단으로 삼아 마을의 주인으로 행세하는데, 야쿠자와 손잡은 수수께끼 집단이 대형 레저타운을 건설하면서 두 세력간에 충돌이 일어난다. 아리아스는 가까운 미래의 바빌론이라 할 다카라쵸를 눈 모양으로 형상화했고, 영화는 시로의 눈으로 시작하며, 영화의 말미에서 시로가 만든 조형물 또한 눈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원작 만화에 없는 것으로서, 작품의 주제가 담긴 ‘거기선 뭐가 보여?’라는 질문과 ‘여기선 모두 다 보여’라는 선언과 연결된다. 몸담고 있는 세상이 타락과 범죄로 물드는데도 다카라쵸의 사람들이 현실을 알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반면, 시로와 쿠로 그리고 다카라쵸는 셋이면서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긴밀한 영향을 끼친다. 흰색, 즉 빛, 희망, 믿음, 평화를 상징하는 시로와 검은색, 즉 파괴, 분노, 고통, 증오를 상징하는 쿠로가 어떻게 마주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메타포인 다카라쵸의 안팎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쓰모토는 시로와 쿠로의 세계 중 어느 하나도 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있음에 빛이 존재하고, 현실의 바탕 위에 이상이 자리하는 것처럼 두 세계가 균형을 이룰 때에야 우리는 가치있는 그 무엇을 깨닫고 추구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는 영화가 성취하지 못한 지점에 먼저 도달한 몇몇 혁명적인 작품이 있다. <철콘 근크리트>는 1980년대의 <아키라>와 1990년대의 <공각기동대>를 잇기에 모자람이 없는, 21세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전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철콘 근크리트>는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을 다룬 점에서 철학적이고,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신을 갈망하는 점에서 종교적이며, 현실을 딛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신화적이지만, 영화는 선배들과 달리 무거운 주제를 좇기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길을 택한 결과 감동을 더한다. 여기에 레트로 하드보일드, 애니 누아르 혹은 어떤 다른 이름이 붙을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철콘 근크리트>가 21세기의 아이들을 위한 ‘신세기소년독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리아스가 원작의 많은 부분을 고스란히 가져온 가운데, 테크노 잼 세션을 벌이듯 영상과 함께 숨가쁘게 내달리는 음악과 작가의 손에 스테디캠의 눈이라도 달린 듯 뒷골목을 거침없이 누비는 역동적인 움직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총천연색의 진풍경은 온전히 애니메이션의 것이다. 스크린에서 <철콘 근크리트>을 보며 혼을 빼앗긴 사람에게 DVD는 감동의 피날레다. 환상적인 컬러와 꽉 짜인 소리,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 메이킹필름이 두 가지 지원되는데, 홍보용으로 제작된 것(18분)과 감독의 제작일지(46분) 중 물론 후자를 추천한다. 제작 마지막 해, 촉박한 시간에 맞춰 육체적 고통과 실의를 극복하며 창조력을 발휘한 ‘스튜디오 4°C’의 스탭와 감독의 노고의 기록이다. 그외에 음악을 맡은 영국의 테크노 뮤지션 ‘플래드’와 감독이 나눈 대화(12분), 몇 가지의 데모 모음(7분) 등이 부록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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